진중권이 내 메일을 해킹하고 표절했는가?

진중권이 내 메일을 해킹하고 표절했는가?

<디워>에도 분명 개선해야할 약점은 있다

김휘영 / 문화평론가, bignews@bignews.co.kr

등록일: 2007-09-20 오후 11:02:43

 
▲ 미국에서의 심형래 감독 
  ⓒ 뉴시스
* 편집자주: 이 글에는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있으나, 단정적인 표현이 아닌 의혹제기하는 선을 넘지 않고, 필자로부터, 모든 책임은 필자 스스로 지겠다는 약속이 있어, 필자의 양심과 판단을 믿고 게재합니다.

내 메일은 진정 해킹 당했는가?!?

필자는 19일 저녁 9시 부근 인터넷신문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가 문예중앙 2007년 가을호에 기고한 글이라는 “군중이냐. 다수냐?” 에서 주장한 핵심적인 내용 때문이었다. 그 글에는 바로 9월 19일 새벽 4시에 내가 뉴욕에 있는 교포독자에게 이메일로 보낸 두 가지 테마가 그 표현조차도 그대로, 고스란히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두가지 내용은 영화 디워의 작품성에 대한 결정적인 약점을 지적한 나의 비평 글임과 동시에 또한 후속 편 ‘디워 II‘ 에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내용이었다. 그리고 만약에 디워 II 에서 이런 결정적인 약점만 극복한다면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영화 ET가 거둔 흥행을 초월하는 대성공을 거둘 수 있으리라는 점이었다. 이 E-mail을 보내면서 뉴욕에 계신 교포에게 절대로 공개해서는 안된다는 부탁을 함께 해두었다. 진중권의 글을 보고 난 후, 필자는 급히 교포에게 메일을 보내서 메일의 내용이 드러나는 글을 다른 게시판 같은 곳에 올려 대중앞에 공개한 적이 있냐고 물어 보았다. 그러자 그는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고 안심하라고 했다.

이 영화가 마쵸영화로 공격받을 것이라는 사실은 내가 영화를 보자마자 즉각적으로 알아차렸던 약점이었지만 필자는 절대로 이 이야기를 대중 앞에 밝힐 수가 없었음을 하늘과 내 양심 앞에 고백한다. 대한민국 사회의 발전을 바라는 한 지식인으로서, 단지 내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서, 디워에 있는 이 약점들을 구체적으로 밝혀, 무려 300억원에서 700억 원 되는 거금이 투자된 영화가 흥행에서 참패해서 대한민국 영상문화 전체와 또 한국의 미래 자체에 해를 끼치는 일은 절대로 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한 내 양심을 밝히는 글이 그 E-Mail 내용의 후반부를 구성하고 있다. ( E-Mail 내용은 기사 말미에 밝힌다 -시간 날짜와 내용에 단 한자라도 손을 댄 점을 의심한다면 검찰에 고소를 해도 좋음을 미리 밝혀둔다 )

평론가로서 오늘에서야 말할 수 있는 부분

이제 한국에서의 흥행이 끝나가고 있는 이 마당에 그 동안 말할 수 없었던 이 부분을 기사로 올려서 진정한 비평가로서의 책임, 즉 정당한 피드백 기능을 다해서 후속편에서 더 나은 명화가 나오게 해야 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마지막 책임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이때, 마침 오늘 오후에 외국에서 중요한 손님이 오셔서 그 분을 뵙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그간 9부까지 올린 디워 시리즈 연재물에서 10부 글에서 이 내용을 올려 볼까 말까 하다가, 결국 이렇게 까지 늦어지고 만 것은 아직 디워가 세계시장에서의 성공을 가늠하는 미국시장에서 한창 상영 중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가 한글로 국내에서만 이 비평을 낸다고 해도, 디워의 역사적 의미조차 모르고 오로지 예술성의 잣대로만 재단하면서 의도적으로 까 내리는 세력들이, 내 글의 전체적인 맥락을 읽지 않고, 자신들의 마음에 드는 부분만을 발췌 영작해서 미국 사이트에 올려놓지 않을 까닭이 없으리라는 생각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10부 글은 계속 늦어지고 차라리 다른 주제로 10부를 올릴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진중권의 글에서 바로 내가 보자마자 기절초풍할 만한 내용이 나왔던 것이다.

내가 이메일에 보낸 그 핵심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디워 영화는 심형래 감독께서 지향했던 온전한 가족영화에 이르지 못한 가부장적 이데올르기가 반영된 영화인 것이다. 그렇다고 남성영화 즉 마쵸 영화라는 점이다. (E-메일 내용)

이 약점은 너무나 커서 ‘왕의 남자’에서 수 십 번 씩을 보았다는 광팬들의 대부분이었던 20대 여성들의 발길을 디워에게서 돌려놓게 만들었다. 또 그만큼 작품성이나 예술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안게 있었다. 이 점은 내가 극장에서 관객의 연령별, 성별 분포를 보고서도 확인 바 있다. 의외로 아이들도 적었고 문화의 가장 큰 소비계층인 20대 여성들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고 거의가 30대 이상의 남성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영화 디워를 정확히 표현하면 가족영화와 마쵸영화의 중간지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 어머니 언니 형 동생이 함께 보는 가족영화라기 보다는 아버지 엄마, 형 동생이 보는 불완전한 가족 영화와 마쵸 영화의 중간점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여성관객이 빠진 점에 유의할 것) 내가 영화관을 두 번째 찾았을 때는, 한 20대 여성관객은 디워보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를 보겠다고 남자친구를 조르고 있었다.

희생(犧牲)과 가부장적 코드 -- 디워의 약점

필자가 이런 가부장적 남성 영화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밝혀 온 일은 이제서야 새삼스럽게 나온 일이 아니다. 아주 옛날에 쓴 글 중에, “가족 동반자살과 에밀레종 설화--진보누리“를 읽어보면 너무나 잘 드러난다. 이 글에서 한국에서 일어나는 동반자살은 실은 동반자살이 아니라 ‘무능하고 사악한 생각을 가진 가부장에 의한 명백한 살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이 의식의 원류에는 에밀레 종 설화가 자리잡고 있음을 밝혔고, 또한 임권택 감독의 명화 ‘서편제’를 언급한다. 현재의 멀티플렉스 시절이라면 가히 1,300 만 명도 넘을 만한 수치인 그 당시 120 만명이 감동한 서편제 신드롬이 매우 위험하다는 걸 지적했다.

서편제와 디워의 가부장적 코드

영화 서편제(사실 소설 서편제가 더 어울리지만)에서 필자가 비판한 대목은 아버지가 딸을 명창으로 만들겠다는 개인적인 욕심(?)을 달성하기 위해서 딸에게 약을 먹여서 눈을 멀게 하는 장면이다. 나는 이런 구조는 반휴머니즘적이며 반인권적이라서 이에 감동받고 눈물을 흘리는 일은 가족동반자살 문화를 양산하는 의식의 원형과 그 문화적 궤를 같이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내가 서편제를 마음 놓고 신랄하게 비판할 수 있었던 건, 서편제가 이미 상영이 끝난 영화라서 흥행에 지장이 없다는 사실, 무엇보다 영화 디워와는 다르게 이게 국내마켓에 머물고 있는 영화라는 점이다.

이 글 뿐 만아니라 ‘요재지이와 구미호 전설에 나타난 의식의 원형--인물과 사상, 2006. 1월’ 그리고 영화 ‘영화 클리프 행어에 나타난 희생의 의미’라는 짧은 리뷰 글을 보는 사람이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들 글에서 보다시피 필자가 너무나도 오래 전부터 이런 시각을 갖추고 있었기에 영화 디워가 가진 서사구조에서 가장 큰 약점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세계시장에 진출한다는 점과 또 디워가 작품성이나 예술성을 떠나서 특 A급 CG의 기술력을 선보였음을 높이 샀다.

인문학적 소양은 남에게서 빌리면 되지만 고도의 CG 기술력의 국산화는 매우 어렵고도 중요한 일이다. 이 점으로 인한 한국 영화사에서 차지하는 의의와 신화와 전설상의 이무기와 용을 영상미로 살려냄으로 해서, 아시아 전체 국가 중에서 동양 용(龍)에 대한 영상적 이미지에 대한 표준(標準)을 한국에서 확립해 버린 그 위대한 업적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또한 지식인으로서 대중 앞에서 거짓말은 할 수없는 노릇이기에 가능한 영화 디워의 작품성이나 예술성에 대한 이야기는 할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 사실 디워의 스토리라인이 엉성하고 연기가 어색하다는 점은 열성 디워팬들까지 너무나 충분히 인정하고 있는 바다. 이런 마당에 나까지 굳이 이 부분을 이야기 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 내용은 디워가 가지는 한국영화적 의의를 모르는 사람들의 비난글로도 너무나 넘쳐 흘렀으니까. 다만 필자는 작품성과 예술성과는 별개로, 디워의 서사구조의 장대성 등 작품성과 예술적인 측면 이상의 것이 있음을 충분히 볼 수 있는 시각(Eye)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보다 더 큰 의의를 점하는 한국과 아시아 영화사에서 가지는 디워의 역사적 의의와 인류 발달상에 있어서의 기술의 중요성을 증기기관차의 예나 CG와 안료 등의 소제목으로 이에 대한 이야기를 피력했다. 사실 이것은 디워에 대한 일방적인 폄훼 공작에 대항하여 균형을 찾을 수 있는 길이기도 했고 억울하게 난도질 당하고 있는 영화 디워를 향해 객관적인 조명을 비춰주어서 비로소 형평성을 유지해 주는 길이기도 했다.

인문학적 소양의 부재--디워의 최대약점

만약, 필자가 영화 디워를 제작하는 과정에 조금이라도 관련된 사람이었다면 절대로(NEVER) 연약한 여성인 사라가 여의주의 운명 때문에 희생되는 서사구조를 갖고서 대중 앞에 선보이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했으리라고 하늘 앞에 맹세한다. 심형래 감독님을 어떤 방식으로 설득을 해서라도, 차라리 사라를 사랑하게 된 이든이 사라의 운명을 대신해서 희생되는 구조로 만들도록 조언했을 것이다. 그렇게만 되었다면 영화 디워는 필연적으로 20대 여성들의 눈물샘을 자극했을 것이며, 그 극적 효과로 인해서 이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최소한 지금 수익의 10배 정도는 능히 얻을 수 있었을 것이고, 그 CG의 화려함과 함께 세계적인 명화(名畵)의 반열에 확실하게 올랐을 것으로 확신한다.

E-메일에 대한 두 번째 핵심적인 내용은 디워가 왜 흥행에도 지극히 불리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여성의 희생시키는 서사구조를 가질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점인데, 죄송하게도 그건 심형래 감독님의 인문학에 대한 소양의 부족 때문일 것이라고 밝혔다. 영화 클리프 행어에도 여성의 희생이 나오는데 이때는 그 여자를 희생시키는 놈을 사악한 악당으로 그려 냄으로써 관객, 특히 여성관객들의 반감을 사지 않는다. 하지만 디워는 어쨌든 간에 이조시대의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수절해야 하는 이조시대의 여인상을 그려 놓은 것 같다. 이 지점에서 디워는 절대로 비평가의 눈을 피해갈 수 없다.

다음은 필자의 글을 어떤 분이 2006년 4월 10일 진보누리 쟁토방에 퍼온 글인데, 특히 영화나 소설 등 예술에 종사하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번 쯤 읽어 둘 필요가 있다.

클리프 행어(Cliff Hanger)에서의 희생

내가 살아오는 동안 한 가지 확실하게 터득한 진리가 있다면 남보고 희생(犧牲)하라고 말하는 사람치고 악마와 비슷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내가 생각하는 희생은 남한테 말하기 전에 자기 스스로 솔선수범해야 해야만 하는 것이다. 영화 클리프 행어(Cliff Hanger)에는 이 희생(犧牲)의 본질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명징하게 보여준다. 현금수송 비행기를 납치한 일당들이 하얀 설원으로 덮인 로키 산맥을 지나면서 식량부족인가 하여튼 일행 중 한 명을 죽여야만 하는 상황에 봉착한다. 이때 그 두목이 가장 친한 여자 동료의 머리에 총구을 겨눈다. 그녀가 설마 하는 두려움의 눈초리로 응시할 때, 그는 비정하게 방아쇠를 당긴다. 그러면서 싸늘하게 내뱉는다. 희생!(Sacrifice)! 필자는 이 세상에서 남보고 희생(犧牲)하라고 말할 때의 모습이 가장 정확하게 표현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감독이었다면 그 단어를 메아리로 몇 번이고 증폭시켰을 것이다. 필자 생각엔 남에게 희생하라는 말을 내뱉는 인간치고 사이비 교주나 악당이 아닌 경우는 없다. 내가 북한의 인권법안에 반대하는 무리들이나 김정일을 싫어하는 이유도 바로 이 점에 있다. 민족주체강성대국을 위해서 인민들이 희생하고 참아라고? 그런 말을 하는 인사들을 볼 때 마다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웃기지 마라! 네가 먼저 굶고 네가 먼저 희생해라. 김정일이 솔선수범해서 희생하고 북한 인권 법안 통과를 반대하는 너희들이 수용소에 갇혀서 인권 유린을 당해봐라. 나는 이런 사람들에게서 비수같이 차가운 위선과 사악한 악마성을 발견한다. --- 2006년 4월 10일 / 문화평론가 김휘영

물론 디워에서의 사라의 희생은 전 인류를 부라퀴의 마수로부터 구해내기 위한 고귀한 희생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닌 자발적 희생이라는 점에서 이조시대 열녀가문을 위한 수절과부의 강요된 희생과는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디워에서는 사라가 왜 꽃다운 나이 20세에 왜 자신이 세계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 희생되어야 하는가 하는 테마에 대한 내적 갈등부분이 전혀 묘사되지 못했다. 특히 같은 나이 또래의 20대 여성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이를 보는 관객들은 왜 사라가 희생되어야 하는가 하는 반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필자는 이를 은유적으로 장대한 서사(Epic), 억압된 서정(Lyrics) 표현해 두고 디워의 상영이 끝난 후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논해서 생산적인 담론을 하려고 했다.

클리프 행어와 디워에서의 여성의 희생, 그리고 이조시대의 수절과부의 희생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은 충분히 디워에 비우호적인 비평가들이 악용할 수 있다. 아니 이는 심형래 감독이 비판을 들어도 별로 할 말이 없는 부분이다. 사실상 심감독은 영화를 출품하기 전에 이 부분에 대해서 인문학에 대해 조예가 깊은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셨어야 했다. 실제로 헐리웃 블록버스터 <매트릭스>에는 영화 제작자뿐 만아니라 예일대, 하버드대 등에 재직하는 수 십 명의 철학자와 인문학자들이 동원되어 브레인스토밍을 한 후에 나온 작품으로 알고 있다. 그 결과 매트릭스에 나오는 오라클이 왜 흑인 여성이 되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인종적 성별의 안배까지 철저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300억 이상 투자되는 영화라면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심형래 감독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며 또 되어서도 안 되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건 심형래 감독 혼자만의 책임이 아니라 영화산업관련자 전체의 문제이자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필자도 영화 <디워>를 보는 그 즉시 이 문제점을 충분히 파악했다. 그래서 필자가 쓴 글에서 ‘디워에는 서사구조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풍부한 서사구조를 갖고도 이 정도 밖에 못만들었느냐는 비난을 받는 것이 오히려 정당하다고 했다.’고 말했다.(6부-8월 20일 빅뉴스)

이런 주장을 자신만만하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진중권은 자신이 가진 그 내적한계로 인해, ‘서사구조(narrative structure)에 대한 정확한 뜻조차도 모르고 있다는 확신이 섰었고, 또 필자의 시각이 옳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필자는 처음부터 디워의 약점은 진중권이 엉터리로 비난한 ’서사구조가 없어서가 아니라’, ’이렇게 풍부한 서사구조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로 밖에 못 살려내었는가를 비평해야 하는 영화’라고 단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미국 평단에서도 디워의 플롯(Plot)상의 문제점을 말하는 비평가는 나왔지만 그 서사구조(narrative structure)에 대한 비판을 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왜냐하면 그건 평론가로서의 자격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무식하기 짝이없는 발언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겠기 때문이다.

만일 진중권이 TV토론에서 디워에 서사구조가 아예 없다느니 하는 상상도 못할 무식함을 드러내지 않고 이 부분을 집중 공략했다면 나도 특별히 진중권을 비판할 필요조차 없었다. 왜냐하면 이 부분은 내가 먼저 또 함께 느낀 부분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지점에서 내 E-Mail에 있는 내용이 진중권이나 진중권 팀에게 어떤 경로로든 노출된 후, 그 내용이 도둑질 당했으리라는 강한 의구심이 심증으로 굳어지고 있는 부분이다. 만약 진중권이 이 사실을 진작에 알고 있었더라면, 굳이 만인이 보는 TV에 나와서 “내가 이렇게나 무식한 사람이오“ 라는 광고를 하는 방식으로 영화 디워를 비판할 이유가 있었을까? 마쵸 영화, 그리고 감독의 인문학적 소양의 부재 이것 둘이면 가장 핵심적인 디워 비판이 되고도 너무나 충분한데도 말이다. 정말 디워를 비판할려면 바로 위 두 부분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진중권이 이 부분을 알고서도 자신의 무식을 한량없이 드러내는 내용으로 전 시간을 할애한 점은 진중권이 진짜 바보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참고 기사) 디워의 서사구조 ---디워(D-war)와 H-war, 용과 드래곤의 신화,후속편을 기대하며 (4부-2007-08-20 빅뉴스)디워를 비평하면서 ‘디워에 서사구조가 없다’ 란 주장을 하면 자신이 정말 무식한 사람이라는 걸 온천지에 광고하는 꼴이다. 아무리 그가 영화 디워가 싫고 이 영화의 흥행이 못마땅해서 의도적으로 흠을 잡으려고 해도 그 서사구조를 문제 삼다니 정말 황당하다. 진중권은 영화나 문학 더 나아가 변희재의 지적대로 미학 자체에 대한 기본기가 안 갖춰진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도 백번 지당하다. 미학이야 그의 전공으로 공부는 한국 사람들 중 많이 했을 텐데도 불구하고 이런 무식한 말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하고 있는 걸 보면, 이게 진중권 자체의 내적 한계에서 비롯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겠다. 즉 심미안이 없거나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증거다. 그렇지 않다면야 아무리 어떤 목적의식으로 TV에 출연했다고 해도 자신의 내적한계를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그 목적을 달성하는 지혜 정도는 가지고 있으리라 판단되기 때문이다. <<“디워는 진중권의 무식에서 나온 지적대로 서사구조가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그렇게 훌륭한 서사구조를 갖고도 그 정도로 밖에 못 살려내었는가 하는 비평이 오히려 어울리는 영화다.”>>

바로 위에 << >>로 표시된 부분이 절대로 사후에 교정된 부분이 아님은 온 넷 상에 떠돌아다니는 필자의 글을 검색해서 그 날짜를 직접 확인해 보면 안다. 필자가 그 많은 글을,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 올려놓은 까페나 블로그, 그리고 미디어 다음 아고라 광장 같은 게시판에 있는 글을 다 수정한다는 일은 불가능할 것임을 독자들이 더 잘 알고 있지 않겠는가?

인간의 감동이라는 서정(抒情 또는 敍情)의 억압

이것이 바로 디워 시리즈에서 필자가 장대한 서사가 미학적인 숭고미나 우아미에서 나오는 장엄함에 이르지 못한 그 간격이라고 지극히 은유적으로 밝힐 수밖에 없었던 부분이다.

이 대목을 자세히 보자.

(참고기사)심형래 감독의 한계는 대한민국의 문화 자체의 한계-- 영화 디워의 스케일이나 서사구조가 너무나 장대해서 그 자체로 어떤 미학의 경지를 압도할 정도였고 가 장엄함을 압도한 부분도 많고 또 CG 기술의 현란함과 정교함이 감탄을 넘어 그 자체로서도 감동의 경지까지 닿아 있을 만큼 대단하다는 점은 인정한다.심형래감독의 디워는 그 스케일이 장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장엄함이라는 숭고미나 비장미를 만드는 데에는 말 그대로 1% 부족했고, 헐리우드를 넘어선 한국의 독자적인 CG 기술은 관객에게 경이와 감탄을 유발시켰지만 그것이 섬세한 감동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부분적인 흠이 분명히 있다. (별로 도와 준 것도 없이 이 부분을 벌써 밝혀서 심감독께 심히 미안함을 밝힌다) :: 이상 빅뉴스 기사--(5부)디워, 성공한 영화에는 분명 무엇이 있다- 디워현상과 사육제 신화 코드 2007.8.24

아는 것, 그리고 말해야 할 것과 말하지 말아야 할 것

솔직히 필자는 이런 걸 현미경으로 보듯이 전부 다 보고 있었음에도 그렇게 세세한 내용을구체적으로 밝혀서 디워의 흥행에 해를 끼치는 일은을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절대로 할 수 없었던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필자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 모두에게로부터, 이런 교육을 철저히 받았다. 두분의 가르침은 “세상을 제대로 보는 눈을 갖기 위해서 지식을 쌓고 정신적 수련을 해야 하지만, 안다고 해서 다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셨다. 막대한 투자로 만들어 진 디워가 세계시장으로 진출하는 이 시점에서, 아무리 필자가 이런 약점들을 송두리째 다 알고 있었다 한들, 절대로 말할 수 없었던 부분이다. 적어도 그 상영을 끝내기도 전에 이런 비평을 쏟아 낼 수는 없는 일로 판단했다. 솔직히 이 일로 마음고생도 심하게 했다.

내가 보낸 메일함에는 이 뉴욕의 교포에게 디워의 성공을 위하여 내가 직접 번역한 용과 드래곤의 신화에 대한 영역본도 들어 있다. 나는 그 분이 그 영역본을 미국의 유명 사이트에 미국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올려 주기를 요청했음도 밝힌다. 난 이 해외 교포의 한국에 대한 애정을 믿었으며, 또한 메일 말미에 절대로 어디에도 공개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는 단서를 달아 놓았다.

내 메일해킹과 표절 여부에 관한 의심이 들게 하는 제(諸) 사항들

1)내가 뉴욕에 메일을 보낸 시간은 정확히 9월 19일 새벽 04시 22분이다.
2)진중권의 기고글이 공개된 시각은 09월 19일 17:44:16 (정확하게 13시간 22분의 시차가 있다)
3)내 메일에 나와 있는 내용이 그 표현까지 한자도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일치한다.

a) ‘마쵸영화’, ‘인문학적 소양의 부재’ 여기서 마쵸영화는 내가 급하게 메일을 휘갈기듯 쓰느라 '가부장적 세계관의 영화'라고 쓰야 할 용어였는데 그러면 설명이 너무 길어질 것 같고 또 사(私)적인 E-Mail이라서 누가 볼 염려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냥 급하게 쓴 용어에 불과하다.

위 본 글에서 보듯이 사라의 희생과 조선시대 열녀의 희생은 전혀 다른 의미다. 하나는 전 세계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온 고귀하고 자발적인 희생인데 반해, 또 하나는 유교사상에서 오는 반봉건적, 강제적 희생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흥행의 측면이나 작품의 예술성의 측면 모두에서 중요한 건, 이 구조에서 한 아리따운 여성이 20세 생일 맞는 일이 축복이 되지 못하고 마치 티벳이나 인도나 네팔의 여자 성모(聖母)로서 불행하게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걸 미화시키는 영화에 여성들이 반감을 가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 권리라는 것을 심형래 감독이 알아 주셨으면 좋겠다. 심감독께서 가진 천부적 직관력에 필자가 말한 이런 점을 미리 파악 할 수 있을 정도의 인문학적 소양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디워에 나오는 사라의 희생은 비록 그 내용은 다를 지언정, 표면적으로는 이조시대 정절이나 열녀라는 유교적 가치로 포장된 폭력에 희생되는 가여운 수절과부를 그린 모습과 별 다를 바가 없다. 이 차이를 제대로 알고 제대로 설명할 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의 지성인들 밖에 없다.

단지 이 나이 또래의 여성관객들은 이에 대한 거부감을 자세히 설명하지는 못해도 그냥 발길을 돌리는 것으로 항의할 뿐이며 이는 흥행에도 작품성에도 커다란 암초로 등장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마쵸영화는 아놀드 슈왈츠제네거 주연의 코난 시리즈(이걸 서양에서는 ‘Saga’라 표현한다)같은 영화를 말한다. 그런데 진중권의 글에서는 전혀 여과 없이 고스란히 나왔다는 점도 우연의 일치치고는 너무나 이상하다.

b) 인문학적 소양의 부재라는 말은 철학의 부재나 다른 용어로도 충분히 표현될 수 있는 부분인데 진중권이 기고한 글에도 정확하게 단 한자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나왔다는 점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c) 다음 진중권을 기고 글이 나온 신문기사에 나온 알리바이성 글이 더욱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신문기사에 따르면 “진씨의 글에 대해 ‘문예중앙’ 측은 “논란의 소지가 있어 게재 여부를 고민하기는 했지만 ‘디 워’ 논쟁 초기에 받았던 글이라서 새로운 불씨를 지피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라고 나온다. 이를 자세히 분석해 보면 일단 너무나 어색하다. 이는 의도적으로 누군가 질문을 한 척하면서 이 기고 글의 알리바이를 만드는 대목으로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계간지를 발간하는 문예중앙 측은 어떤 글을 싣던 말던 굳이 그 이유를 대중에게 밝힐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벗어날 수 없다. 즉 진중권이 19일 오전이나 오후쯤에 원고를 보내고 이를 미리 받았다고 말해 달라는 언질을 주었다면 충분히 나올 만한 알리바이성 해명으로 충분히 의심해 볼만한 대목이다.

그리고 새로운 불씨를 지피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말은 속단이다. 이 글은 디시갤러리에 올라 간 후 많은 사람들이 관련자들 즉, 김정란 교수와, 김규항 그리고 강준만 교수를 조롱하는 글로 악용되고 있다. 여기서도 필자가 검색해서 확인 한 내용은 이 기고 글이 디씨갤러리에 올라온 최초의 시각이다. 마초로 검색하여 이 글을 찾아 추적하니 역시 2007-09-19 18:47:46으로 13시간 22분의 시차 이후(14시간 27분)다. 다음 레디앙에 진중권이 올린 시각은 09월 20일 (목) 11:11:29이다. 이렇게 온 사방에 올리는 사람이 이 내용을 어떻게 참고 기다렸을까도 진정으로 불가사의다. 필자야 디워에서 보호해야할 소중한 빛 같은 걸 미리 본 사람이라서 이 점을 속속들이 알면서도 참을 수 있었지만 진중권이야 자신의 명예와 무식함까지 깍여가면서 디워를 비평 아닌 비난했던 사람이 아닌가?

<필자의 확인과정>
이 신문기사 글을 본 후 기절초풍할 것만 같았던 필자는 일단 일련의 확인과정을 거쳐야 했다.

가장먼저, 인터넷 서점 알라딘과 YES24와 영풍 교보문고의 인터넷 서점을 검색해보니 어느 한 곳도 문예중앙 가을호(119호)가 비치되어 있는 서점이 없었다. 구체적으로 밝히면 알라딘은 일시품절, YES24는 Yes24-상품준비(09월28일)출고완료(09월28일)배송완료(09월29일)로 나온다. 나머지 교보문고 영풍문고 인터넷 서점에는 검색조차 안됐다.

그래서 다음날 오전 문예중앙(랜덤하우스코리아) 측에 직접 전화를 해 보니 처음 전화를 받으신 홍*연님은 가을호는 아직 인쇄도 안들어 갔으면 추석 이후에 나온다고 했다. 더 정확한 확인을 위해서 내선으로 들어가 보니(TEL:3466-88**)에서 김*정 씨와 통화가 되어서 이 책이 언제 나오고 지금도 기고를 받느냐고 하니까, 이 분께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가을호가 벌써 9월 5일 날 나와서 시중 서점에 배포되었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필자가 괜한 의심과 쓸데없는 상상을 했구나 하는 생각에 맥이 빠졌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진중권이 이 글을 기고한 시각은 적어도 필자가 메일을 쓴 19일 새벽 4시 이전으로 소급되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결코 풀리지 않는 묘한 의구심을 결코 떨칠 수 없었다. 만일 이게 사실이라면 진중권이 그동안 “평론가적 자질이나 미학적 지식 전반에 대한 기본기조차 의심당할 정도로 무식한 말들을 대중앞에 쏟아낼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는 마지막 의문은 결코 풀리지 않았던 것이다. 솔직히 그의 후배 변희재의 지적대로 미디어에서 네임밸류를 올리기 위해서 나가지 말아야 할 곳까지 나서면서 온갖 짓까지 다해온 진중권의 그간 행적으로 보아서도 절대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마지막으로 교보문고와 영풍문고에 직접 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았다. 그러자 두 서점 담당자 모두 문예춘추 가을호(199호)는 아직 입고되지 않았고 10월 이후에야 나올 것이라는 답변을 했다.

필자가 랜덤하우스 측에 전화로 확인한 바로는 9월 5일 날 발간되어 시중에 이미 배포되었다(김*정사원)고 하는데 혹 착오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좀 더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 재고파악을 부탁한다고 더 자세히 요청하니까, 서점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가는 곳이 물류센터인데 아직 물류센터에도 입고되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다시 랜덤하우스 측으로 전화 문의를 해 보니 점심시간이라 한 시간 정도 전화가 되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1시 40분 즈음에 다시 전화를 거니 이번에는 남자 분이 받으셨는데 백** 편집자라고 하셨다. 여기 직원은 9월 5일 인쇄되고 시중 서점에 다 배포되었다고 하는데 교보 영풍문고에는 전혀 입고도 안되어 있는 상태라고 한다. 아까 전화 받은 그 사원의 성함을 물으니 김**이라 가르켜 주었고 백편집자께서는 문예중앙은 전국 서점에 다 배포된다고 했다. 그래서 교보 영풍문고 그리고 유명 인터넷 서점에도 이 책이 아직 나온 데가 없다고 말하고 나서 다시 영풍문고에 전화를 걸어서 직원 이*희씨게 출판사에 직접 전화를 해서 다음과 같은 요청을 했다. “출판사 랜덤하우스 측에서는 시중에 이미 배포되었다고 했는데 대한민국 최고의 서점인 교보문고,영풍문고(가나다순)에도 없다고 하니 어찌된 일이냐, 혹시 광화문점에는 없더라도 다른 지점에 책이 있는 것 아니야?” 라는 질문을 하니까, “그런 일은 절대 없습니다. 전산망으로 다 연결되어서 전국 지점의 상태가 한꺼번에 다 나옵니다” 필자가 “출판사에 직접 전화해서 확인해 줄 수 없느냐?” 고 요청하자, 담당자는 친절하게도 전화를 끊지 말고 기다리라면서 직접 랜덤하우스 측으로 전화를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방금 백편집자님과 통화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무려 15 분 정도 동안 출판사측에서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 고객님, 지금 전화를 받지 않고 있습니다“ 또 전화한 후에 ” 이번에도 전화를 안 받네요“ 하는 전갈이 내 수화기로 들렸고 ”고객님 나중에 다시 연락해서 확인전화 드리겠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전화문의는 그만두었다. 약 10여분 후 전화를 받고 보니 내일 21일에 입고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라고 했다. 이것이 내 확인과정의 전말이다.

시점(時點)의 문제

이 시점이 왜 이렇게 중요한 논점인가? 내가 뉴욕 교포에게 이메일을 발신한 시각이 정확하게 19일 4시 22분이었으므로 만일에 진중권의 저 표현이 이 시각 이전에 대중에게 공표되었다면 내가 오히려 표절의혹에 휩싸여야 하는 시간적인 문제가 발생하기에 하는 말이다. 다 알다시피, 이메일에 이미 발신된 내용은 그 날짜나 내용을 임의로 바꿀 수 없다. 삭제나 보관만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약간이라도 바꿔서 다시 발신하면 새로운 시각이 찍히고 만다. 고로 내 쪽의 시간적 알리바이는 확실하다. 만약 이 일이 불거져서 필자가 검찰에 소환된다 하더라도 명확한 증거로 제출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랜덤하우스측 사원인 김*정씨는 왜 한참 뜸을 들이다가 9월 5일날 인쇄완료되고 시중에 배포되었다고 하셨을까? 교보 영풍문고 강남점에도 샅샅이 문의한 결과 확인된, 아직 입고조차 되지 않은 이 책의 배포시기에 대한 고의나 어떤 착오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필자의 의구심은 진중권이 랜덤하우스측으로 원고를 보낸 이메일이나 팩스에 나온 날짜와 시각에 대한 확인이 있기 전에는 쉽게 풀릴 수 없는 성질의 것이지만 만약 이 일로 진중권이나 랜덤하우스 측에서 소송을 걸어온다면 필자는 언제든지 응할 자세가 되어 있다. 물론 공교롭게도 우연의 일치가 일어날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왜 여태까지 디워를 비난하기 위해서 그렇게 혈안이 되어 막말까지 퍼부어가면서 그의 한량없는 무식함을 자랑하던 진중권이 왜 이렇게 ‘진정으로 내용이 있는 비평’은 알면서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은 영원히 미궁에 남는 셈이다.

십계와 벤허, 그리고 디워에서 보는 그레이트 스펙타클

다시 말하지만 심형래 감독은 정말 대단한 일을 했다. 모세의 일대기와 유대인들의 탈애굽기를 그린 영화인 십계 (The Ten Commandments, 1923)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무엇일까? 율브리너와 찰튼 헤스톤이 열연한 이 영화에서 수십년이 지나도 기억에 남을 장면을 뽑으라면, 누가 뭐래도 그건 “홍해바다가 양쪽으로 갈라지는 장면”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할 것이다. 왜 휼브리너와 찰튼 헤스톤의 멋진 연기가 전혀 지목되지 않을까? 이건 사람들은 어떤 대상을 두고 기억에 저장하고 부를 때에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통일시키는 원리가 작용되기 때문이다.

“오 신이여, 이 영화를 진정으로 내가 만들었나이까?”란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말로 유명한 세계적인 명화, 벤허 (Ben-Hur, 1959)를 보자. 이 장면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물어보자? 한결같이 벤허와 멧살라의 전차 결투신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런 걸 두고 그레이트 스펙타클(Great Spectacle)이라고 표현해 왔다. 보통 그레이트 스펙타클이라는 명칭이 붙으려면 그 영화를 본 후 평생을 두고 잊혀 지지 않을 정도로 인상적이어야 한다.

이제 심감독이 만든 영화인 디워를 보자. 디워를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하는 장면을 일생을 두고 잊지 못할 명장면으로 꼽는다. 생각해 보라. 대한민국이 존재한 이래로 무수한 영화가 만들어져 왔지만, 디워의 이 장면만큼 충격 그 자체를 던져 준 영화가 있었는가? 필자는 단 한 개도 없었노라고 단언한다. 이것이 디워가 다른 영화와 비교해서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차이점과 힘이다.

필자가 알고 있으면서도 지극히 은유적으로만 말해왔던 서사구조상의 취약점(사실은 서정상의 취약점)에도 불구하고, 이런 그레이트 스펙타클이 한국에서 무려 830만 명에 이르는 관객의 발길을 모을 수 있었다고 보는 게 정확한 판단이다. 필자의 이 시각은 디워의 미국개봉 후에 뉴욕 타임즈 기자가 “Who Needs Plot When You’ve Got Dragons?-용이 나오는데 플롯이 왜 필요한가?” 라고 설파한 점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적어도 이 기자는 영화의 핵심을 꽤뚫어 볼 줄 아는 고도의 직관을 갖춘 천재임에 분명하다. 심형래 감독이 플롯보다 CG에 주력한 이유를 제대로 파악했음에 분명하다. 이런 직관과 천재성은 심형래 감독이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를 선택하게 했고 그 결과 오늘의 디워가 탄생했다. 다만 여기서 필자가 아쉬워 하는 점은 이런 직관에 인문학적 세계관이 조금만 더 가미시켜, 20대 처녀를 희생시키는 구도만 피했더라면 이번 흥행의 수십배에 달하는 흥행을 올렸을 것임에 틀림없고 또 세상에서 올해의 영화로 디워가 뽑혔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을 것으로 판단한다.


영화 십계를 보러 가는 사람들 치고 ‘홍해바다가 실제로 갈라지는 장면’을 보겠다는 목적이 없이 영화관을 찾은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한다. 벤허에서도 ‘네 마리의 말이 이끄는 전차를 타고 달리는 전투신‘을 염두에 두지 않고 영화관을 찾아간 사람이 있었을까?

흥행요소

벤허에서 보인 그 전차결투 장면은 그 영화의 주제와 별 연관성도 없는 단순한 볼거리였음에 주목하라. 윌리엄 와일러 감독은 막대한 돈을 들여서 그 장면을 흥행을 위한 안전장치로 넣었음에 틀림없고 감독의 의도는 정확히 달성되었다. 디워를 보러 영화관을 찾은 사람들에게 애국심 코드를 말하는 비평가들은 제발 공부를 다시 하기 바란다. 관련 전공공부도 공부지만 무엇보다 ’관객(인간) 심리에 대한 연구‘부터 선행하기 바란다. 디워가 가진 이런 ’그레이트 스펙타클’을 보러 가는 사람들에게 애국심 코드를 내세우는 건, 매년 진도 부근으로 ’현대판 모세의 기적‘을 보려고, 그 외진 곳까지 몰려가는 사람들의 행렬을 두고 애국심코드 때문이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어이없다. 많은 사람들이 바다가, 아니 정확하게 바닷물이 빠져 그 가운데 땅이 잠깐 드러나는 일에 서사구조가 있어서 찾아가는 것도 아니다. 작품성이나 예술성 때문에 가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런 신기한 볼거리를 보러 가는 것
뿐이다. 이를 흥행요소로 진도시가 매년 벌어들이는 관광수입을 생각해 보라.

영화 십계(十戒)에 나오는 '바닷물이 위로 솟구치며 갈라지는 장관’도 아니다. 짧은 시간동안 아주 초라하게나마 육지가 배를 드러내는 모습을 보러, 거의 하루를 걸려서 불편한 교통을 감수하면서까지, 그 먼 곳으로 찾아 가는 관객들이, 그것보다 훨씬 대단한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하는 장관‘을 보기 위해서 ’아주 가까운‘ 영화관을 찾은 일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손쉬운 일이다. 더구나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하는 장면‘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수 천 년 역사이래로 축적되어 온 ’집단 무의식의 원형(archetype)‘을 형상화한 일임을 알면 더욱 그렇다.

필자는 대한민국에서 출품된 모든 영화를 모아놓고 가장 충격적이고 인상적인 한 장면을 꼽으라면 당연히 영화 디워에서 선보인 이 장면이 뽑힐 것으로 확신한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평론가가 단지 자신이 이런 엄청난 흥행요소를 못 찾아냈다는 이유로 애국심코드를 거론한 일은 작품과 관중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다. 나아가 나는 ‘평론가가 아니라 불치의 색맹증세를 가진 바보천치요‘라고 고백하는 일에 다름없다. / 김휘영 (문화평론가)

by 알랭드보통 | 2007/09/21 00:24 | 트랙백 | 덧글(0)

김휘영과 진중권 :: 평론개혁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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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평론계개혁해야 at 2007/09/18 03:42 # x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한국의 평론계에도 김휘염같은 분께서 나와서 정리를 좀 해 주셔야 겠습니다. 꼭 누구라고 말은 안해도 자질도 없고 무식한 인간들이 나서서 꼴값을 떠는 모습은 정말 눈뜨고는 못보겠더라고요.
Commented by 평론계개혁해야 at 2007/09/18 07:02 # x
Commented by 평론계개혁해야 at 2007/09/18 06:54 # x

한국의 평론계에도 김휘영같은 분께서 나와서 정리를 좀 해 주셔야겠습니다. 꼭 누구라고 말은 안해도 자질도 없고 무식한 인간들이 나서서 꼴값을 떠는 모습은 정말 눈뜨고는 못보겠더라고요.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눈팅 (2004-05-17 15:21:29, Hit : 154, 추천 : 11)
제목 / 칼럼 강화에 동의하며 칼럼진 추천


1. 무식과 위선(무위) : 전방위 고품격 대표 칼럼

2. 진중권 : 미학

3. 자유석공 : 경제 문제

4. 새질서 : 미국 문제

5. red21green : 환경 문제

6. 쇼르쏘띠 : 여성 문제

7. 철공사 : 철학

8. 해륙풍 : 국제 문제

9. 수군작 : 수군작식 맑시즘

10. 최원 : 좌파 윤리학

11. V : 인종 문제

12. 빵장사 : 핸리조지 경제학

13. 송태경 : 자본론

14. 박종석 : 유럽 정당사

15. 햏자2 : 연애 문제




Commented by 평론계개혁해야 at 2007/09/18 06:59 # x
진중권--무식하죠, 엄첨 무식하죠.
김휘영--박학다식합니다. 사상과 철학과 지식의 끝을 모를 정도입니다.

진중권--비겁하지요. 그래서 헛소리 늘어놓고 나서 나중에 자삭을 많이도 하죠.
김휘영--양심을 굽히지 않죠. 여태까지 자기 양심에 걸고 글을 쓰고 단 한번도 자기 글을 지운적이 없답니다.

진중권--기회주의자의 전형이죠.
김휘영--원칙과 양심에 따른 글잽이죠.

진중권--도망만 다니죠
김휘영--도망 안다니죠.

by 알랭드보통 | 2007/09/18 07:53 | 트랙백 | 덧글(9)

김휘영 문화평론 '너희가 서사 구조를 아느냐'

[디워시리즈]너희가 서사구조를 아느냐 / '디워'와 '반지의제왕'|○김휘영의 문화평론
전체공개5/2007.09.10 23:38

너희가 서사구조를 아느냐 / '디워'와 '반지의제왕'

'디워'에는 서사구조에 갖춰야할 모든 요소가 다 있다

김휘영 / 문화평론가, bignews@bignews.co.kr

등록일: 2007-09-10 오후 5:40:08

 
▲ 2007 문화콘텐츠 국제컨퍼런스에 강단에 오르는 심형래 감독 
  ⓒ 뉴시스
반지의 제왕과 디워의 서사구조

아주 오래 전에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 영화 <반지의 제왕>이 성공한 원인을 분석한
프로그램을 보았다. 예일대나 하버드대학 등의 유명 석학들은 반지의 제왕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충분히 대중에게 어필할 만큼 탄탄한 서사구조의 전형(典型)을 갖추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그들이 말한 내용을 반추해 보면, 미숙한(immature) 주인공(Protagonist), 현명한 조력자(Mentor), 거대한 적(Antagonist), 시련(Obstacles)과 극복(Overcome), 그리고 가치(virtue)를 위한 고귀한 희생(犧牲,Sacrifice) 또는 희생정신 등이 뛰어난 작품으로 널리 사랑받는 서사구조의 틀이다.(이 희생부분은 서사구조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어서 실제로 희생정신이나 살신성인의 정신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그 희생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말고는 별개의 문제다)등이 성공하는 소설이나 영화를 만들어내는 거대 서사시의 틀이다.)

미숙(未熟)한 주인공(Protagonist)과 시련

장차 영웅이 되어 이 세계를 구원하게 될 운명을 타고 나지만, 능력이나 세력, 그리고 정신력 모두에서 아직 미숙한 어린이 영웅(immature heroes)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통상 이런 인물은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처럼 단 한사람으로 집약되는 구조를 지니는 것이 일반적이나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주인공은 의외로 분산되어 나타난다. 호빗족인 프로도, 레골라스, 왕의 귀환에서는 곤도로 왕국의 아라곤이 각 서사구조의 단계마다 주인공의 역할을 분담한다. 그런데 주인공(heroes)과 시점의 분산이라는 치명적인 서사구조상의 단점은 오히려 1-2년 정도의 시간적 단절이라는 외적 도움도 큰 영향을 주었겠지만, 3부작 모두를 성공시킬 수 있는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음이 참 아이러니하다. 심형래 감독의 디워에서는 부라퀴와 선한 이무기가 그 역할을 가장 크게 맡고 있다. 전에도 말했다시피, 동양(東洋) 신화에서 나오는 용(Ryoung)은 서양(西洋) 신화나 영웅서사시에 나오는 드래곤과는 전혀 다른 신성한 영물(靈物)이다. 때문에, 베오울프나 니벨룽겐의 반지 같은 서양의 전형적인 영웅 서사시적 구조의 비좁은 틀에 스스로의 몸을 움츠려 들어가서, 동양 신화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은 점은 심형래 감독이 가진 본능적인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으로 심감독의 감각과 놀라운 직관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이 지점에서 그는 충분히 한국의 이무기를 소재로 한국적 환타지 영화를 개척해 내어 세계 시장에 내놓을 만한 자격을 획득하고 있다 하겠다.

영화 디워에서는 선한 이무기가 자신보다 훨씬 강력한 이무기인 부라퀴의 방해로 승천을 못하게 되는 구조로 시작된다. 그리하여 다시 500년이라는 시련의 기간을 맞아야 하고 그 이후 제 2차의 결전은 미합중국 LA시에서 전개된다.

강력한 적(Overpowering Antagonist)

사우론과 브라퀴가 각각 어리고 미숙한 주인공이 도저히 대적할 수 없는 적, 그것도 매우 파괴적이고 강력한 능력을 가진 적(敵)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이 가지는 능력은 결코 개인적인 능력에 국한되지 않는다. 아무런 능력이나 준비가 안 된 ‘미숙한 주인공‘과는 세력과 자금력 등 모든 부분에서 압도적인(Overwhelming)격차가 존재한다. 사우론과 악의 군대, 브라퀴와 아트록스 군단(軍團)이 그것이다.

시련(Obstacles)과 극복(Overcome)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에서 사악한 간신에 의해서 늙은 왕이 위엄과 총명을 잃고 초라한 몰골로 변해 있는 모습, 아라곤이 악의 화신 사우론의 침략을 맞아 패배주의의 나락에 떨어져 망연자실하고 있는 상황, 3부 마지막 부분에서 선과 악의 싸움의 향배를 결정할 절대반지를 파괴하러 가는 과정에서, 길을 안내하고 있던 골룸에게 사사로운 탐욕이 증폭되거나 또 이 탐욕을 달성하기 위해서 주인과 하인인 프로도의 샘 사이의 이간질, 그로 인해 샘(Sam)에 대한 프로도의 불신감의 증폭 등이 내적 갈등과 외적 위기를 만들어 낸다. 또 이는 극중 주인공이 극복해 내야 하는 시련이기도 하다. 이때 간달프나 샘은 특유의 능력이나 신념으로 이를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찬가지로 디워의 제주도 신에서 하린 어머니의 갈등, 하린을 수호하는 무사로 등장하는 나림의 갈등, 그리고 선한 이무기가 500년 만에 여의주를 얻어 승천하려고 할 때, 이 여의주를 뺏으려고 등장한 악한 이무기 부라퀴의 탐욕, 그리고 그에 대한 저항적 장치로서의 나린과 하림의 자살 등이 시련으로 작용한다. LA

멘토(Mentor)와 샘

대중에게 어필하는 데 크게 성공하는 서사구조는 거의 모두가 이 현명한 조력자를 거의 필연적으로 두고 있음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이 현명한 조력자를 흔히 멘토라고 칭하는데, 그 어원은 호메로스의 일리어드 오딧세이에서 발원한다. 그 유명한 트로이의 목마(木馬)를 고안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오딧세이는, 바다의 신(神)인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바다 위에서 10 여 년 동안 온갖 풍랑을 겪게 된다. 그가 오랫동안 왕국을 비운 동안, 그의 아내 페넬로페와 그의 왕국과 재산을 노리는 수많은 정적들이 야심을 드러낸다. 이때 오딧세이의 장자(長子) 텔레마쿠스를 끝까지 지켜주며 도와준 사람이 바로 멘토(mentor)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서사시(敍事詩)라고 일컬어지는 ‘일리아드 오딧세이’가 인류에게 선보인 이후, ‘멘토‘란 말은 ‘현명한 스승’을 지칭하는 일반명사가 되었다.

현명한 조언자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간달프(이안 맥켈런粉)와 디워에 나오는 보천대사(잭)가 바로 이 멘토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 간달프와 보천대사(LA에서의 잭)는, 주인공이 실의에 빠져 있을 때마다 그들만의 특별한 소명의식(Cause)과 지혜와 충언으로 그들의 용기를 불러일으킨다. 이들은 주로 어리고 미숙한 주인공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부담스러워하고 도피하려 할 때, 특별한 능력과 신념으로 그들의 사명감에 불을 당겨 제 위치로 데려다 놓는 중요한 일을 맡고 있다. 곤도르 왕국에서 사악한 간신에 의해서 늙은 왕이 위엄과 권능을 읽고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간달프는 홀연히 일어나 아니오(No!)라고 말하며 그를 깨우쳐 준다. 또 3부작 영화 중, 1부 초반에서 그는 호빗족의 마을에 나타나는데 여기서 그는 프로드에게 주어진 사명을 숙지시킨다. 3부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 결말부분에서 세상의 운명을 건 선과 악의 전쟁에서, 가장 강력한 역할을 하게 되는 절대반지를 파괴하러 가는 여정(旅程)이 나오는데, 이때는 간달프보다는 충실한 하인인 샘(Sam: 영어권에서 Sammy라고도 불리는 이 이름은 실제로 ‘충직한 하인’을 지칭하는 용어다!)이 주인인 프로드를 돕는 훌륭한 조력자 역할을 한다.

보통 현명한 조력자는 드라마 대장금(大長今)에서의 한상궁(양미경粉)처럼, 범인(凡人)이 갖지 못한 신비한 능력으로, 미숙한 주인공을 도와 그의 숨겨진 능력과 사명감을 일깨워주지만, 자신은 무대 뒷면으로 사라지는 역할에 그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반지의 제왕>에서는, 이 조력자인 간달프 스스로 회색에서 백색으로 스스로 업그레이드되는 성장과정을 거친다는 점에서 다른 서사구조와는 매우 다른 차이점을 갖는다. 사실 이 점은 ‘주인공의 분산’과 더불어 사실상 <반지의 제왕>이 갖고 있는 서사구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큰 취약점이라 할 수 있다. 훌륭한 서사구조가 되려면 가능한 시점이 통일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이럴 때에 관객들이 좀 더 쉽고 깊게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형래 감독의 디워에 나오는 보천대사와 그의 LA 환생인 잭은 자기에게 주어진 멘토의 역할을 매우 충실하게 해낸다. 그는 이든(그 뉘앙스가 ‘이스턴‘이란 동양의 의미를 암시하고 있다)에게 조선의 전설을 들려주고 그에게 주어진 운명에 대비하도록 안배한다. 멘토와 샘은 극중에서 영웅이 되는 주인공보다 훨씬 강한 정신력과 자기 확신, 그리고 투철한 사명감을 가진 존재들이다. 디워의 제주도 신에서 하린의 부모나 하린과 나린이 방황할 때의 보천대사나. LA에서 환생한 이든이 정신적으로 방황할 때도, 보천대사의 환생인 ’잭’ 또한 전형적인 멘토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가치를 위한 희생 또는 희생정신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여겨지던 전쟁을 앞두고서, 죽음을 무릎 쓰고 사자(死者)들이 있는 사망의 계곡으로 들어가는 영웅의 결단과 희생정신, 그리고 여의주의 운명을 타고난 사라의 고결한 희생은, 모두 악의 무리에게서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함이다. 이런 결단이나 희생은 스스로 다른 길을 선택을 할 수 있는 데도 불구하고 그 길로 가는, 결코 강요받지 않은 순수한 의미의 희생이다. 이는 악의 무리에게 세상이 짓밟히는 것을 구하기 위한 고귀한 결정이다. 사우론의 공격을 맞아 곤도르 왕국에 있는 용사들의 희생과 저항은 모두 가치(VIRTUE)를 위한 고결한 투쟁이다.

신물(神物)

절대반지와 여의주는 ‘아더 왕의 전설과 원탁의 기사‘에 나오는 엑스칼리버나 트랜스 포머에서의 큐브와 비슷하다. 그것 자체로도 특별한 위용을 갖추고 있으며 무엇보다 거대한 서사구조를 결정짓는 특별한 힘을 갖고 있다. 절대반지는 선과 악의 전쟁의 승부를 결정짓는 절대적인 힘을 갖춘 물건이며, 디워에서의 여의주는 선한 이무기와 악한 이무기인 부라퀴가 1,000년에 걸쳐 투쟁하며 얻고자 하는 신물이다. 또 이 여의주가 누구의 손에 가느냐 하는 건, 절대반지가 누구의 손에 들어 가느냐와 같은 중차대한 의미를 지닌다. 악의 무리 손에 그것이 들어가면 이 세상엔 암흑이 도래하면서 멸망하게 된다. 이를 악의 무리로부터 지키는 역할은 주인공인 아라곤이나 선한 이무기가 아닌 프로도와 샘, 그리고 이든과 세라 라는 점도 기억해 둘 만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기타 복선이나 인과관계 관련

사실 서사구조에서 복선이나 인과관계는 큰 영향력을 갖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큰 흐름은 멕베스에서 등장하는 세 마녀(witch)들의 예언이나 내레이션이다. 즉 예언 그 자체가 복선이면서 인과관계를 결정하는 역할을 동시에 한다. 이 점에 대해서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를 보면서 ‘저건 미신인데, 어쩌구 저쩌구’ 하는 사람은 정신병자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를 읽어 보았는가? 전쟁의 각 순간 순간이 올림피아 산에서 연회를 열고 앰브로이드를 즐기는 신들의 변덕이나 기분에 의해서 결정된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영화, <매트릭스>가 차용했다고 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또 어떠한가? 오후에 한가로이 책을 읽던 앨리스가 헐레벌떡 뛰어가는 하얀 토끼를 보고는 그 토끼를 쫓아가게 된다. 이유는? 없다. 토끼는 얼마가지 않아 굴로 들어갔는데 앨리스도 토끼를 따라 굴로 들어갔다. 근데 이게 웬 걸? 굴은 마치 기다란 미로처럼 길고도 길었다. (에피소드 생략) 그 기다란 굴은 끝나고 방이 하나 나왔는데 토끼가 어떤 문으로 ‘휙’하고 들어가 버렸다. 앨리스가 들어가려 했지만 너무나도 작은 문이라서 들어가지 못하고 울어 버렸다.

그런데 탁자 위에 ‘몸이 작아지는 약’ 이라고 적힌 유리병이 있지 않은가? 앨리스는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그 약을 먹었더니, 몸이 순식간에 작아졌다. 몸이 작아지자 자신의 앞에는 커다란 홍수가 펼쳐졌는데, 그것은 조금 전 앨리스가 흘린 눈물이었다. 앨리스는 작아진 자신의 몸에 딱 맞는 크기의 문으로 들어가 다시 토끼를 쫓아갔다.(이하 생략) 여기서 이런 황당한 이야기가 가능한 건 오로지 ‘먹으면 몸이 작아지는 약’이라는 메시지 때문이다. 사실을 말하면 이 황당한 구조가 이 소설을 개연성 없는 황당한 스토리가 되게 하기는 커녕, 앨리스가 찾아간 ‘이상한 나라’를 ‘더욱 이상한 나라’로 만드는 묘한 상승작용을 하고 있다. 그리하여 독자들을 더 넓고 깊은 상상과 호기심의 세계로 인도하는 결정적인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복선과 인과관계

서부영화를 보면, 긴 창 모자에 페치코트를 입은 한 여자가 ‘이건 행운을 가져다주는 거예요‘ 라고 하면서 한 젊고 잘 생긴 총잡이에게 동전(coin)을 한 개 건네준다. 나중에 이 건맨은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방의 총알에 자기 가슴을 정통으로 명중당하고도 멀쩡하다. 하필이면 그 총알이 윗 호주머니에 있던 그 동전에 맞은 것이다. 이걸 보고 ’말도 안돼! 하필이면 그 작은 동전에 총알이 맞다니?‘ 하는 사람들은 정말 대책이 안서는 사람들이다. 이런 구조가 무리없이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단 한 가지 그 여자가 건네면서 한 ’행운’이란 말밖에 없다. 관객들은 거의 잊어버리고 있을 즈음, 그것도 하필이면 가장 극적인 순간에 발휘되는 ‘행운’이다. 하필이면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적의 총알이 다른 곳도 아닌 총알을 맞춘다는 건 로또가 당선되는 일보다 더 희박한 확률이라고 주장하면서 딴지를 거는 사람들은, 예술이나 문화 자체에 대한 문외한임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중이며 애초에 영화를 보는 시각에 심한 결격사유가 있는 사람들임에 분명하다. 트랜스포머 조차도 “태초에 큐브가 있었다”라는 황당한 말장난으로 시작되고 있음을 생각해 보라! 여기서 큐브가 왜 있었는지를 묻는 것은 오페라 하우스에 짙은 선그라스에 나시티, 그리고 허벅지가 흔히 드러나는 미니 스커트를 입고, 알래스카 말라뮤티같은 개와 앙!앙! 울어대는 아기를 데리고 들어온 입장객의 몰매너에 다름아니다.

마찬가지로 영화 디워에서 하림과 나린이 LA에서 이든과 사라로 다시 태어나는 것도 전혀 어색한 장치가 아니다. 동전과 총알에서 ‘행운’이라는 코드 하나로 충분하듯이, 이든과 사라는 ‘환생’ 이라는 단 한마디로 그 존재의 의의를 충분히 확보한다. 더구나 이든은 어릴 적에 골동품상에서 신이(神異)한 경험을 하고, 사라 또한 20세가 되어가는 즈음, 이상한 꿈을 꾸고 특별하게도 500년 전 조선에서 하린이 가졌던 그 문신(tatoo)까지 가지고 있다. 이 정도의 안배에도 이 구조가 이상하다고 말하는 건 서사구조에 대한 무식을 고백하고 있는 일이며 그 의도가 순수한지에 대한 의문이 들 정도다.

이든이 위기의 순간에서 목숨을 건지고 그가 가지고 있던 목걸이가 빛을 발하면서 이카루스 군단장을 처치한 일은 비난받을 이유가 전혀 못된다. 보천대사가 영화의 초반에 이든에게 목걸이를 건네면서 한 말, “이 목걸이가 어떤 위기에서도 널 보호해 줄 것이다“라는 예언 하나로도 그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에 이상한 잣대를 갖다 대서 악성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것은 관객들이 시원한 맥주를 마시기도 전에 ‘김을 다 빼버리는 행위’임에 틀림없다. 이런 잣대라면 난도질당하지 않을 SF영화가 하나도 없게 됨은 굳이 말할 필요조차 없다.

황석영

최근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소설가 황석영은 <바리데기>소설을 내놓고 인터뷰를 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 “요즘 젊은 소설가들은 인문, 철학에 대해서 공부 좀 해라. 요즘 소설가들을 보면 서로 네 문체가 좋니, 내 문체가 좋니 칭찬해 주곤 하는데,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성(構成)이다.” 그는 문체보다는 구성과 스토리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했다. 그는 더 나아가 “스토리와 구성은 소설을 이루는 뼈대지만 문체가 인테리어에 지나지 않으며 인테리어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사실, 디워가 부족한 건 서사가 아니라 서정(抒情)이다. 필자가 반지의 제왕과 비교하여 드러내 보인 바와 같이 그 구조는 너무나 훌륭한데 그 인테리어에 해당하는 문체, 즉 영화에서 말하면 연출에서 몇가지 흠결을 내포하고 있을 뿐이다.

과도한 서사, 억압된 서정(Splendid Epics, Oppressed Lyrics)

디워의 한계이자 단점에 관한 냉정한 평가를 하자면 다음과 같다. 디워의 한계는 서가(敍事)가 없어서가 아니라 서정(抒情)의 억압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1000년의 걸친 선한 이무기와 악한 이무기의 투쟁, LA 시가(市街) 전투신, 환생의 모티브를 가진 배경의 전환 등 서사구조 자체는 너무나 장대하다. 그 결과 볼거리가 풍성하고 이런 과정을 너무나도 훌륭한 CG 기술로 영상화 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관객들은 이점에서 '감탄‘을 연발하고 있다. 다만 연 출상 노출된 사소한 결점으로 이를 보는 관객들이 ’감동‘을 자아내는 데 있어 약간 미적거린다. 특히, 이든은 아무리 급박한 상황에서도 감정을 거의 노출 시키지 않는다. 급박해서 택시를 탈 때는 응당 문짝을 ’쾅!‘ 하고 닫아야 하건만 그는 그 순간에도 ’Lady First’를 몸소 실현하는 너무나도 매너 좋은 신사다. 사실 이든은 영화 디워에서 어찌 보면 중요한 부분인 감동을 주어야 하는 특별한 역할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장은 너무 어정정하다. 그가 분노도 기쁨도 환희도 슬픔도 특별히 표시하지 않는 이상한 존재로 있기에 관객들이 감동으로 가는 길목을 막고 있다.

이런 사소한 결점들은 세계적으로 매우 수준 높고 감동적인 영화라고 평가받는 인생은 아름다워 (La Vita E Bella, 1997, 감독 로베르토 베니니)에서도 나온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 추락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갑자기 화면이 바뀌면서 쿵!하고 떨어지는 까닭에, 이를 바라보는 관객은 거기에 감흥할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는 데 실패한다. 즉 별로 감흥이 없다.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The Mystery Of The Cube, 1998, 감독 유상욱)‘에도 이런 단점이 노정된다. 웬만한 어드벤쳐 영화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밀폐된 동굴에서 바위가 굴어오는 신에서 그 바위는 관객들의 흥분을 점차로 에스컬레이터 시키기 위해서 속으로 ’어,어,어,어,,, 쿵!“ 하는 식으로 점차적으로 굴어와야 함에도 불구하고 너무 빨리 ”어, 쿵!“ 하는 식으로 지나가 버린다. 그러면 여기에 몰입할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한 관객들이 찜찜한 느낌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런 단점을 찾아내는 시각으로 세계적으로 흥행한 ’인디애나 존스’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 그 영화의 감독이 얼마나 치밀한 연출력을 갖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웰컴투 동막골’의 장진 감독이나 ‘괴물‘의 봉준호 감독이 이런 방면에서는 특출한 재능을 갖춘 분으로 판단된다. 물론 심형래감독이 이런 사소한 부분에도 신경을 쓰거나 이런 눈(Eye)을 가진 조연출자를 발굴하여 합류시키기만 해도 충분히 개선될 수 있는 부분들이다. 따라서 후속편에서는 더욱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 개인적인 평가로는 별 5개 중에서 3개 반에서 4개 정도이고 순수한 괴수영화라는 장르로만 보자면 4개 반 정도다. 그러나 정확한 표현을 하자면 이 영화는 단순한 괴수영화가 아닌 판타지 영화의 전형(典型)을 그대로 갖추고 있는 매우 우수한 영화다. 괴수영화와 환타지 영화의 가장 큰 차이가 바로 반지의 제왕같은 거대한 서사구조의 존재유무로 보면 특별히 틀리지 않는다. 이점이 디워가 디워 II, 디워III 로 거듭날 수 있는 훌륭한 기반이기도 하다.

골룸과 이무기(Golum & Imoogie)

영화 <반지의 제왕>가 세계에 도처의 문화시장에 상영된 이후 문명국가에서 골룸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고, 이에 대해 특별한 설명이 없이도 소통이 가능한 문화 아이콘이 되었다. 골룸은 한국에서 특출한 개그우먼 조혜련이 열연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마찬가지로 세계의 문화인들 중에서 영화 디워를 본 후에 이무기(Imoogie)라는 한국 고유의 문화 아이콘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로 판단된다. 이 영화를 접한 외국인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한국의 태권도, 김치와 함께 어느 누구나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조금이라도 더 유발시킬 것이 확실하다. 그것은 결국 한국의 관광산업의 발전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국가경제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거나, 세계 속에서 유형 무형의 한국적 문화자산을 세계 속에 꽃 피우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사실, 그동안 <그리스 로마 신화>나 스칸디나비아 반도 부근의 <북유럽 신화>나 서구의 중세 신화들을 읽으면서 내심 느꼈던 질투심 반 부러움 반의 질문을 했다. “서양 사람들도 우리 한국의 신화나 전설, 설화 들을 읽을까? 나의 질문은 당연히 즐겨 읽을까? 가 아닌 읽기라고 할까 라는 질문이었다. 그런데 심감독은 뛰어난 영상미로 한국의 이무기 전설을 만들어 세계 문화인들의 눈 앞에 내어 놓아 그 성공을 목전에 두고 있다.

웃김과 우김의 어릿광대(idiot), 진중권

진중권에게 있어서 ‘웃김‘은 그의 유머감각이 아니라 회피다. 교묘한 트릭으로 자신의 논리부재를 감추고, 대중이 그가 던진 웃음 속에서 긴장의 끈을 늦출 때, 비겁하게 도망가기 위한 장치다. 언제나 토론이 핵심부분에 접어들어 수준이 조금 높아지고 자신의 약점이 드러나려고 할 때마다 이 장치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진중권은 이 웃음을 순간적인 재치나 즉흥성으로 만들어 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언제나 이 대목에서는 ‘이렇게 웃겨서 도망가야지’ 하는 치밀한 계획으로 미리 준비해 와서는, 그 대목에서 어김없이 써먹는다. 준비해온 보따리에서 그가 풀어놓는 독사에 혼비백산하는 건 대중(大衆)이 아니라 논점(論点)이다. 그래서 그는 이 위기탈출의 부분에서 가장 진지하다. 이 순간에 누군가가 끼어들기라면 하면 전혀 못들은 척 하면서 마이크에 침을 튀기며 그 웃김이 가진 목적을 완성하려 시도한다.

‘웃김‘에서 ’시옷' 하나 차이인 ‘우김‘은 진중권의 또 다른 전매특허다. 이미 저질러진 일이라서 도저히 회복불능인 상태에서는 그는 어김없이 ’우김’의 전술을 사용한다. 이 부분은 진중권의 학자로서의 양심이나 인간성의 일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부분이라 매우 흥미롭다. 필자는 남이 내 잘못이나 논리적인 오류를 올바르게 지적해 주었을 때, 그것을 인정하거나 사과하는 건 패배가 아니라 진정한 용기라고 배웠다. 그러나 이런 순진한 상상은 진중권이라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일어 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숫제 마이크를 혼자 잡고 있다는 점을 너무나 다행하게 생각한 나머지, 뻔뻔하게 우김으로서, 논리적인 설명이 아닌 일방적인 선언을 택한다. 그가 디워에는 ‘서사(구조)가 아예 없다‘라고 한 말이 대중 앞에 공개되어 버렸기 때문에 그는 그의 말이 틀림을 인정하기 보다는 차라리 옥쇄의 길을 택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전략은 단 한가지 끝까지 ’우김’ 뿐이다. 자기가 생각하는 서사구조가 무엇인지도 말할 수 없고 또 왜 디워에 서사구조가 없는지도 증명해 내지 못한다. 그가 간간히 말하고 있는 건 서사구조가 아니라 그 서사 구조를 풀어가는 과정에서의 연출의 미비점에 불과하다.

규모의 경제와 디워 II

사실 18금 영화로 세계시장을 공략한다는 건, 전 세계 영화시장 규모의 절반을 스스로 포기하고 들어가는 일임에 다름없다.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가 네티즌과 5대 1 토론하면서 들고 나온 ’규모의 경제(the economy of scale)’란 용어는 생산규모가 커질수록 생산비용이 절감된다는 걸 나타내는 경제용어다. 즉 ‘시장규모의 확대’라는 뜻과는 전혀 별개의 용어임을 지적해 둔다. 심형래 감독이 설파한 대로, 영화 한편이 최고의 대기업 몇 개 또는 중소기업 수 천 개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문화상품으로서의 의의를 함께 가지는 시대로 접어든 지 오래다. 아니 모든 문화 상품들 중에서 이런 의의를 가지는 분야로 영화에 필적할 대상이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시대에 사는 영화평론가가 기본적인 경제 용어 의 뜻도 모른 채 공중파에서 그 용어를 오용하다니, 도대체 대한민국이 어디로 갈려고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6부로 나눠진 동영상 중 2부 중간 즈음에 진중권 영화평론가이자 중앙대 겸임교수의 입에서 어쩌다 ‘툭’ 튀어나와 버린 용어, ‘규모의 이코노미(The economy of scale)’부터 개그가 시작된다. 요즘 언어의 뉘앙스나 언어적 구조나 장치를 이용해서 아이러니나 풍자 또는 해학을 만들어 내던 고도의 ‘언어개그‘가 시들해지고 즉흥적이고 단발적인 ’몸 개그’가 유행하고 있음에 분개했음인가? 스스로 미학자 지망생임을 내세우고 있는 진중권씨는 몸소 그 언어개그의 진수를 대중들 앞에 화려하게 선보인다. 나는 이 대목을 보면서 족히 3-4분은 웃었으리라. 필자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잘 안 되는 사람들은 일단 ‘규모의 경제’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기 바란다. ‘규모의 경제’란 절대로 진중권이 사용하는 그런 경우에 사용되는 용어가 아니다. 이 용어는 ‘생산량을 늘림에 따라 그 비용이 상대적으로 절감된다’는 경제용어다. 그런데 진중권은 300억이라는 막재한 자본이 투자된 디워는 한국 시장의 규모에는 안맞으며 헐리우드같은 미국 시장에나 맞는 영화라고 거침없이 말하면서 그의 무식을 드러낸다. 이를 한국과 세계 시장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자랑스러운 영화 ‘디워’에 적용해서 알기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계속) 김휘영 /문화 평론가

뱀다리) 솔직히 기본적인 문제인 디워의 서사구조의 부재명 같은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긴 글을 써서 설명을 해 주어야 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개탄스럽다. 어떻게 하면 한류를 헐리우드에 접목시켜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인가 등의 미래지향적인 글을 써내는 하는 필자의 의무감 같은 것 때문에 이런 일에 시간을 허비하게 되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by 알랭드보통 | 2007/09/18 07:23 | 트랙백 | 덧글(1)

김휘영 문화 평론 '너희가 서사구조를 아느냐?'

마루
"김휘영 문화평론 '너희가 서사구조를 아느냐?" 에 대해 달린 댓글

글의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읽다가도 한편 너무 공격적인 글이 아닌가(그것도 한 평론가에 대한...)싶어 조금 아쉽네요. 김휘영님의 다른 여러 글들도 읽어보고 세상 보는 식견을 배우고 싶습니다. 헌데... 김휘영님은 이 까페 안들르시나요? -_-ㅋ아무튼 건필하시고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
taker01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반지의 제왕과 비교해서 서사 비교하실줄이야.. 예상도 못햇습니다..
재미있게 읽고잇으니 글 많이많이 써주세요~
형돌 김휘영, 변휘재 이 두사람 엄청 기회주의적인 인물일 뿐입니다. 디워엔 전혀 관심 없었다가 한참 논란이 된 이후인 100분토론 이후에 진중권 까면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그런식으로 자기 이름을 좀 알려보겠다는 속셈인거죠. 김휘영 이사람은 더한게... 그 목적이 자기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입니다. 즉 심형래와 시나리오 계약이 목적인 거죠. 이런 사람이 디워 옹호하는 글 적었다고 난리법석떠는 여기 사람들 보면 참 안쓰럽습니다. 그리고 저 두사람은 논리적으로 맞는것도 아닌 악의적으로 진중권 까기 위해 까는 글만 올릴 뿐입니다. 일반 시민인 제 눈에도 김휘영 저사람의 논리적 허점이 너무나 쉽게 눈에 띄입니다. 일반시민이 전문가 글에서 헛점찾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런데 김휘영 저사람은 자기 이익을 위해 디워를 무조건 옹호하고 무조건 진중권을 까서 인기얻을려고 글을 적으니 제눈에도 쉽게 헛점이 보이는 거지요.
jungtw3023 기다리고 있었는데 드디어 새글이 나왔군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항상 글 을 읽을 때마다 한가지씩 배웁니다.
무위님의 글을 읽으면서 오랫동안 잊고있었던 '책읽기'를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부디 좋은 글 많이 써주시기 바랍니다.
형돌 잡다한건 빼고 저사람 글에서 중요한 요점만 몇개 지적해보겠습니다.
1. 미숙한 주인공과 시련 -> 일단 주인공이 이무기가 아니지만 일단 맞다고 칩시다. 선한이무기는 악한 이무기와 성질만 다를뿐 거의 동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차이점은 부라퀴는 자기 군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선한 이무기도 거와 맞서는 목걸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기다가 여의주도 착한 이무기 편입니다. 즉 군단이랑 목걸이는 셈셈되는 거라 치면 부라퀴 < 선한이무기 + 여의주 이런 공식이 되는데 뭐가 미숙하다라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군요. 억지로 반지의 제왕에다 끼워맞출려니 이런 말도 안되는 소리까지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냥 적이 강력하다라면 이해가 되는 것이지만 주인공도 이와 동등하게 강력합니다. 절대 미숙한건 아니죠.
형돌 2. 시련과 극복 -> "디워엔 주인공들이 하는 역할이 없다." 디워를 평한 대표적인 말입니다. 쫓기는거 밖에 안한단 거죠. 조선시대에서도 시련에 대한 극복방법은 자살입니다. 즉 여의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스스로 그 역할을 포기함으로써 어물쩡 넘어간 셈이지요. 여기서 '자살'과 의미있는 '희생' 은 다릅니다. 자살이란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이고 희생은 대의를 위해서 자기가 죽음으로 다른사람들이 잘된다는 측면이 강합니다. 선한 이무기가 어떻게 선하고 악한이무기가 어떻게 악한지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들이 택한건 단순 자기역할 포기 그이상 그이하의 의미도 없습니다. 반지의제왕에선 주인공들이 그 반지를 파괴하기 위해 갖은 고생을 다하는 것에 비해 단순히 자살하고 쫓기는 것만 하는 디워랑 비교자체가 불가능 한 것이지요.
형돌 3. 복선과인과관계 -> 김휘영의 대표적인 논리는 이겁니다. 인과관계가 빈약한 영화를 찾아내어 "이런 영화도 이렇게 인과관계가 빈약한데 왜 디워만 까는냐?" 이런 논리가 태반입니다. '디워가 인과관계가 잘되어 있다' 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디워자체분석으로 잘된 인과관계를 보여주면 끝입니다. 근데 늘상 김휘영의 방식은 타영화 비교해서 상대적인 인과관계를 찾을려고 하죠. 주인공이 미국에서 환생한게 뭐가 어색하지 않다는 겁니까? 이무기는 분명 한국전설입니다. 즉 한국의 풍토에서만 의미를 가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무기와 주인공들이 전혀 이무기와 관련이 없는 미국서 대뜸 환생하는데 그게 뭐가 어색하지 않을까요? 목걸이 하나가 모든 적군을 물리치는데 단순히 보천대사가 어떤 말을 했다고 그 황당함이 사라질까요? 보천대사가 그런 말을 했다면 보천대사는 목걸이의 성능을 알고 있었을텐데 왜 위급할때 사용법을 알려주지 않았을까요? 목걸이의 작동도 적군에 의해 작동합니다. 이게 뭐가 황당하지 않다는 겁니까? 보천대사의 말한마디로 모든게 정당화 된다는 논리 정말 어이 없을뿐입니다. 그런 논리를 펴는 바탕에도 다른 영화에서 그런
형돌 (짤렸군요) 그런 논리를 펴는 바탕에도 다른 영화에서 그런식으로 복선을 마련했기 때문에 디워도 괜찮다라는 이런 논리가 저변에 깔려있습니다. 복선처리가 잘된 영화랑 비교해서 그런말 한번 해보시죠? '다른 영화도 이런식으로 복선처리했더라... 그러니 디워도 문제없다.' 꼭 복선만이 아니라 모든면에서 김휘영의 논리는 이런식입니다. 정말 허술해보이는 김휘영 글만 계속 퍼오길래 그냥 지나쳐 보려다가 댓글 달고 갑니다. 그런 기회주의자 김휘영과는 놀지 마세요.
jungtw3023 하늘위로님...여기 안티가 위장가입했네요...ㅋㅋ
jmong007 형돌/ 여기와서 전혀 이치에도 안닿고 말도 안되는 소리 하면 기분이 좀 나아지나요? 글을 자세히 읽으면서 공부나 좀 하세요. 뭐가 대뜸 환생했다는 말인가요? 동전-행운-총알 관계로 하린 나림-환생-이든과 세라, 이든의 어릴 적 빛 쏘임현상, 세라의 문신 이런게 안보이나요? 김휘영님이 한갓 시나리오 계약 이런거 때문에 글을 쓰시는 것 같나요? 님은 김휘영 문화평론가님이 쓴 (디워 관련 글 말고)글들도 좀 읽고 많이배우고 많이 반성하면 발전이 좀 많을 거 같네요.
jmong007 형돌/ 웃김과 우김의 어릿광대(idiot), 진중권
하고 규모의 경제엔 관한 글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대한민국 정말 한심한 나라 맞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세류 형돌/ 1. '자살'은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한 죽음입니다. 이것은 사전적 의미로 객관적이고 누구든지 수용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한 사람이 죽고 그것이 사건을 만들어내고 타인의 눈으로 비추어져 그 죽음에 대한 평가나 생각이 나올때에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으로 변이됩니다. 저는 반대로, 불리한 상황에서 최대한 저지선을 만들기 위해 자살을 시도함으로써 부라퀴의 승천을 막은 것을 볼 때, 희생정신이 있다고 봅니다. 이것은 저의 주관이며 당신의 의견도 그저 주관일 뿐입니다. 우리의 의견은 다른이들에게 '정보' 일뿐, '정답'이 되지 못합니다. 자신이 말하는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당신에 대하여 저는 그것에 반문하는 정보를 알려 드립니다.
세류 2. 헐리우드에 맞추어 기획한 영화입니다. 당연히 언어적 차이로 인한 자막처리 문제는 미국 현지화를 고려할 때 영어를 주로 사용하는 주인공이 제일 좋기 때문에 미국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입니다. 그 주인공들이 고도의 태권도 기술을 익혀서 맨손으로, 맨발로 아트록스 군단을 물리치기라도 바라는 겁니까? 아니면, 경찰이나 군인이기라도 바랬다는 겁니까? 아니, 이럴경우엔 개인행동에 제한이 걸리므로 적절하지 않습니다. 최고의 직업 설정은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이든의 '기자'라는 직업 설정은 미국사회에 생기는 사건을 접하고 다른 사건과 연계되기 용이한 '적절한' 설정' 입니다. 그 직접에 의해서 물리적 공격을 방어하거 파괴할 여력은 없었지만 만약 이든이 다른 직업을 가졌더라면 새라를 찾아낼 수 있었을까요?? 차라리 무술을 취미로 가졌어야 한다고 우겨보시죠^^
세류 3. 저는 김휘영 씨의 글을 보기위해 들렀다가 당신의 의견에 반박하기 위해 잠시 이 카페에 잠시 가입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따라서 김휘영씨를 옹호하는 글은 쓰지 않습니다. 다만 전통적인 서사구조를 기반으로 하여 약간의 틀을 벗어나 대성공을 거두어 장르적으로 입지를 굳힌 반지의 제왕을 디워와 연관지은 점은 흥미로웠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반지의 제왕을 입에 담은 심형래 씨의 언행록을 기억해 볼 때 반지의제왕을 정보로써 필히 참고했을 거란 생각이 드는군요. 김휘영 씨가 예로 든 '반지의 제왕'은 내용의 서사적으로도, 흥행면에서도 손색이 없는 모범적인 비교 대상입니다. 당신이 이 부분에 비판을 한다면 반지의 제왕을 낮춤으로써 디워의 서사력도 깎아내리는게 고작일테지만 그럴 식견은 없을테고.. 그저 '다른것이 괜찮으니 이것도 괜찮다'는 논리의 취약점을 꼬집기에는 그러나, 김휘영 씨가 내놓은 '모범적인 비교 대상'이 적절하기 때문에 달리 비판할 여지가 없을것 같군요
형돌 jmong007/ 이무기는 한국의 전설인데 왜 전혀 이무기랑 관계없는 미국에서 환생했는지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없다는 말인데 무슨 빛쏘임 세라문신 타령이요? 그건 환생했다는 데에 대한 장치일 뿐이죠. 제발 남의 글 제대로 읽고 좀 댓글 답시다. 대충 설렁설렁 읽고 되는 안한 댓글다는거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그리고 규모의 경제에 관한 글은 '머언여정'님도 한번 언급하던데 저 위에 글에서는 안나와 있군요. 단지 진중권이 그 말을 언급했다 그런데 잘못사용했다 이정도 뿐이군요. 그에 관한 글이 전체적으로 나와있는게 있으면 보고 나중에 말씀드리죠.
형돌 세류/ 1. 님도 제 글 좀 자세히 읽어보고 댓글좀 다세요. 상대편 말은 건성으로 흘러듣고 자기말만 하는데 요즘 토론하는 사람들 자세임? 제 글에보면 왜 여의주의 의미없는 자살과 희생적인 자살에 대해 비교해가며 글을 적었습니다. 그런건 눈에 안보이시나요? 난독증을 가진 분들 때문에 다시 말씀해 드리죠. 디워에서 착한 이무기와 악한 이무기가 나오되 착해서 얼마만큼 사람들한테 이로움을 주는지 그리고 실제로 이로움을 행사하는지와 악해서 얼마큼 악하고 사람들 해치는지에 대해 나와있지 않습니다. 그런상황에서 택한 자살이 얼만큼 희생적인 의미를 가질까요? 악한 존재에 대한 뚜렷한 부각이 없다는 말입니다. 반지의 제왕에서 사우론도 실지 어느만큼 악한지 보여줍니다. 그런식으로 보는이와 공감을 형성하는거죠. '아~ 절대 반지가 사우론 손에 넘어가면 안돼. 그럼 다죽어!' 이런 공감 말이죠. 디워에서 이런 공감도 형성 못한채 죽어봐야 여의주의 자기 역할에 대한 포기밖에 안된단 거죠. 만약 님이 봤을때 희생적이라고 봤다면 그렇게 보십시요. 님이 근거도 없이 자기 생각으로 그렇게 본다는데 전 안말립니다. 누구에게나 감정의 자유란 있는 법이죠.
형돌 세류/ 2. jmom007님에게 적은댓글과 공통점이 많네요 그 댓글 참조하세요. 미국 주인공 썼다고 머라했나요? 자꾸 쌩뚱맞은 말만 하시네. 한국의 전설이 왜 미국에서 환생했는지에 대한 당위성이 없다는 말인데 자꾸 뭔 딴소리만 주절대시나?
3. 왜 반지에 제왕에 대한 비교가 말도 안되는지는 제 위의 댓글에서 다 적은거니 굳이 다시 적지 않겠습니다. 왜 '모범적인 비교 대상' 이 못되는 지는 제 글을 다시 읽어보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나머지 부분은 그저 개인적인 비방밖에 없으니 그냥 살포시 무시하기로 하겠습니다. 진중권씨도 디워란 영화에 대한 비판이나 디워와 관련된 현상에 대해 비판했지 심형래씨를 개인적으로 비방 한적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왜 김휘영이나 당신(세류)같은 사람은 남을 비방해서 자기가 이길려고 하는지 모르겠군요.
세류 형돌/ 1. 영화 제대로 보았습니까? 악의 이무기의 아트록스 군단이 조선나라를 부수는것.. 이것이 악 아닙니까???? 당신은 그저 당신 잣대에 맞지 않으면 '없다'고 편하게 정하는 식이군요. 당신이 이 영화에서 바라는 정보는 객관성과 당위성에 근거한게 아니라 그저 당신의 취향을 충족시켜주길 바라는 청자의
세류 요구일 뿐입니다. 징징징 때쓰는 것밖에 안보이죠. 게다가 남 헐뜯거나 반말 찍찍하면서 에티켓없이 행동하니 더하니 가관입니다
세류 형돌/ 2. 헐리우드에 맞추어 기획한 영화입니다. 미국 주인공 괜찮고 그러니 미국에 살고, 미국이란 나라, 지구에 있으니 이무기 언제든지 찾아가서 휘저울수 있습니다. '헐리우드를 목적으로 기획한 상업적인 영화'라는 전제에서, 미국에서 왜 환생했느냐? 라고 물어보면? 영화에 출연시켜서 돈벌려고! 라는 뻔한 대답을 당신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인가요??????????????????
세류 3. 저는 모범적인 비교대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찬성합니다. 그리고그점에 대한 저의 의견을 달아두었습니다. 당신은 그저, 서사적인 문제보다는 서사를 연출하는 곳곳의 연결부위를 지적한 것에 지나지 않고 그것은 관객의 충족을 위한 연출의 요구를 하는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전혀 객관적이지 않고 주관적인 것이지요? 그걸 갖고 서사력을 헐뜯지는 못하니까 자기가 주장하는 것이나 다시 읽고 오라는데, 뻔하거든요? 정말 이 글의 논제에 맞는 헐뜯기를 해보셔요ㅊㅊ
noro0314 선한 이무기가 주인공이라고라? 먼 주인공이 영화끝날 때나 등장하냐? 계속 어디 짱박혀 있었던 거야? 차라리 부라퀴가 주인공이라고해라.(그럼 디워는 죽을고생하고도 결국 얍삽한 선한 이무기란놈한테 여의주 뺏기고 결국 살해당하는 부라퀴의 비극이 되겠지만..ㅋㅋ) 디워는 용가리나 아기공룡쭈쭈랑 비교해야지, 반지의제왕 같은거랑 비교할려니깐, 더구나 비슷한 수준이라고 억지쓸려니깐 니머리에 쥐가 나는거다. 심형래 눈에 띄어서 세상 편하게 살려니깐 힘들지...?
noro0314 걍 스토린 개판이고, 씨지도 헐리웃에 비하면 후지지만, 한국영화 수순에서는 역대 최고이며, 또, 700억이라는 제작비를 모을수 있었던 심형래의 능력은 평가받을만 하다고 해라. 그게 딱 디워의 수준이다.
워터 1, 소설태백산맥을 읽지 않은 관객이 영화태백산맥을 보면?
2, 소설반지의제왕이 한편의 에니매이션으로 제작되었을때의 재미없음과 3부작 CG를 동반한 영화로 제작되었을때의 파괴력의 차이는?
3, 화면 위로 줄줄이 줄줄이 올라가는 알파벳 자막이 스타워즈를 기다리는 팬들을 만들지는 않았을까?
4, 스페인 내전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점심시간인갑다 하는거고,
5, 마오리족의 문화적 전통을 알고 뉴질랜드 영화 전사의 후예를 보면 더욱 영화읽기가 풍성해진다는거.

지금 미국시장을 노리는 디워에게 필요한것은?
제.대.로.된. 활.자.매.체.적. 지원이라는 것인데...

신화에 신화소가 있듯이 서사에 서사의 코드만 존재하면 되고,
지금 미국시장에서 히트를 치려면 간절히 요구되는 것은 바로 패키지로 같이 퍼부어줄 활자매체적 지원사격.
심심한 사람들은 버립시다.
워터 머지 않은 미래에 '평론가들 다 입에 칼물고 엎어져라~!!'하는 글들로 넘쳐날게 눈에 선하니까
심심한 사람들은 버립시다.
워터 스토리 전개 띄엄띄엄해두 상관 없습니다. 뭐 에피소드 읽기로 보는 영화도 있는걸요.. 소설반지의 제왕이 영화 반지의제왕의 스포일인가요? 해리포터의 작가가 영화 헤리포터의 스포일러 인가요? 지금 이 빌어먹을 조국과 평론가넘들이 심감독에게 해줘야 할 정말 목마른 부분은 바로 제대로 된 나레이션 컨텐츠 제공 입니다. 식구사업하는 냥반들 표현을 빌자면, '코 바르는 야당쉐이들'은 버립시다.
워터 동의부대 다산부대 조뺑이 가문서 최선을 다해서 봉사활동 하고 있는데, 샘물교회 선교와서 봉사한답시고, 조낸 코바르고 조낸 훼방놓구 갔다는거.. 자자.. 봉사활동 하시는 분들도 심심한 사람들은 버립시다.
워터 더더욱 중요한 것은 관객은 왕이라는거.. 저기 노로씨나 형돌씨도 재미있게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가꼬 디빠로 만들어버려야 한다는거.. 어떻게 하면 저들을 디빠로 만들것인가 하는것.. 물가로 끌고가서 먹어라 먹어라 한다고 먹습니까? 물에다가 딸기향도 첨가하고, 쵸컬릿두 첨가해서 먹게 만들어야 한다는거..
뚜디패문 더 꼬라지 나서 않먹는다는거..
doulos17 형돌//형돌님의 자기주관적인 모든 생각을 보며, 전형적 "진중권류"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첫번째 리플에 대한 리플입니다. 제가 볼땐 진중권씨야말로 기회주의자입니다.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말은 진중권씨에게 써야 하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논란의 중심에 설수록, 미디어에 출연하면 할수록 그 자체가 권력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죠. 김휘영님의 글 1부에 이미 그에 대한 설명이 나와있습니다. 디워를 까는것은 (님 입장에서 정상이기에)정상이고, 그에 반박하것은 기회주의가 되는군요. 제 눈에는 진중권씨야말로 기회주의이고, 그것에 반박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으로 보입니다. 지식인으로서의 양심이 있다면 당연히 일어나야 할 일들입니다.
심형래와 시나리오 계약이 목적이라..정말 실소를 금할수 없군요. 6부 마지막 부분에 대한 말씀이신듯한데, 저야말로 그부분에서 김휘영씨께 가장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평론가라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며 존재해야할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doulos17 1. 미숙한 주인공과 시련 -> 부라퀴 < 선한이무기+여의주 공식에 대해..
영화의 갈등구조를 보면, 부라퀴와 선한이무기, 아트록스 군단과 이든(하란)입니다. 님의 공식대로 표현하자면 부라퀴 > 선한이무기, 아트록스군단 > 이든(하란) 이죠. 선한이무기는 부라퀴에게 깨졌고, 하란이나 보천도사는 아트록스 군단 몇명 상대하기도 벅차고, 이든이나 새라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도망만 다니는 신세입니다.
하지만 영화 도입부에서, 잭이 어린 이든에게 들려주는 전설에서, 보천도사가 하란에게 장신구를 건네는 장면에서 예고된 각성을 통하여 부라퀴 < 용(님 말씀대로 선한이무기+여의주) , 아트록스군단 < 각성한 이든(님 말씀대로 이든+장신구)이 되는 것이죠. 이러한 미숙한 주인공들이 "성장"하고 "각성"하여 권선징악을 실현시키는 내용이야말로 재미와 카타르시스를 주는 설정인데, 매트릭스와 달리 디워에선 성장이 없는 각성이라는것이 아쉬움으로 남죠. 그것은 논외이고..
각성 이전의 적들과 각성 이후의 주인공들을 비교하며 주인공이 미숙하지 않다고 주장하시는 부분에서 죄송하지만 좀 많이 웃었습니다..
하늘위로 doulos17 / 김휘영님께서 메세지가 왔는데, 외국인들이 한국의 이무기 전설과 또 디워에 대한 이해도를 높히기 쉽게 김휘영님이 쓰신 "용과 드래곤의 신화"를 영어로 번역해서 보내 주신답니다. 디워가 미국 및 세계 시장에서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디워 화이팅!! 심형래 파이팅!!! 영구아트 파이팅!! 김휘영 파이팅!! 디워팬 파이팅!!!!!!!
doulos17 2. 시련과 극복 -> "디워엔 주인공들이 하는 역할이 없다." 디워를 "폄하"한 대표적인 말입니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주인공들은 쫓기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던 미숙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갈등구조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있고, 온갖 시련을 극복하며 그것을 이루어낸다는 것에 대한 설명입니다.
조선시대의 그것이 자살이냐, (세상이 파괴되는것을 막기위한) 희생이냐 하는 것에는 논란의 여지가 하지만,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의 여지를 관객에게 맡기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그것이 자살이냐 희생이냐가 초점이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운명과 시련이 초점입니다. 그리고 이든과 새라로 재회한 주인공들에게 그때와 똑같은 운명과 시련이 주어지죠. 그 운명에서 도망치려 할때마다 오히려 그들의 운명에 더 가까이 다가서게되고,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그 운명을 깨닫고 받아들였을때 갈등은 해결됩니다.
남자주인공이 운명을 깨닫고 펼치는 활약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고, 여주인공의 희생은 단순한 자기역할 포기인 것인지요?
doulos17 3. 복선과 인과관계 -> 김휘영님의 대표적인 논리는 이겁니다. 이런 영화의 이러한 부분에서 이러한 시각으로 보는것은 옳지 않고, 이러한 딴지를 거는것이 옳지 않듯이, 디워에 대한 부당한 비판
이나 적절하지 못한 잣대를 들이대는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이 미국에서 환생해야 했던 이유는, 이 영화가 파고들어야 할 궁극적 시장이 그곳이기 때문입니다. 한강이라는 익숙한 배경을 휘젓고다니는 괴물에 우리가 현실감을 느꼈듯이 말이지요. 조선시대의 전설을 오늘날 미국으로 접목시킨 "환생"이라는 접점은, 님 입장에서는 어색했을지 모르나, 제 입장에서는 기발하고 자연스러운 설정이었습니다. 환생의 문제에 개연성을 찾는다는것이 웃기지만, 굳이 따져본다면, 조선사람이 서울시민으로 환생하는것은 개연성이 있고 미국시민으로 환생하는것은 그렇지 않다는 주장은 환생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저 맘놓고 웃어줄 수 있는 개그입니다.
doulos17 목걸이에 대한 복선은, 저도 아쉽습니다. 일반 관객이 이해하기 쉽도록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해주며 마지막 순간에 여러 회상씬으로 다시한번 떠올려줬어야 했는데 말이지요. 영화 초반 설명에서, 부라퀴와 그 군단을 막고 세계의 질서를 지켜내기 위해 천상에서 보낸 최고의 무사(best worrier)가 하란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란의 능력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죠. 대대로 호위무사에게 전해져 오던 장신구를 건네주며, 모든 위험에서 너를 지켜줄 것이라고 하지만, 운명을 거부한(목걸이를 끊어버리는) 그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결국 나린과 함께 죽음을 택합니다.
장신구의 작동방법이란것이 있었다면(이를테면 가운데 구슬을 세바퀴 돌리고 꾹 눌러주는 식이라면) 굳이 하란이나 이든에게 건네줄 필요 없이 보천도사가 작동시켜서 쓸어버렸겠죠. 하지만 그 힘은 대대로 호위무사에게만 전해지는 힘이고, 그 힘을 사용하기위해 호위무사로서 각성할 계기나 동기가 필요하겠죠. 자신의 운명을 깨닫고 받아들여야 가능할 것입니다.
doulos17 잭이 어린 이든을 알아보는 계기가, 선한 이무기 비늘에서 나온 빛(light of heaven)이 이든에게 반응했기 때문이었죠. 호위무사의 힘은 천상이 빛에 대한 어떠한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줄곧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며 도망치기만 하던 이든을 각성시킨 힘은, 즉 위기에 빠진 새라를 반드시 구해야만 하는 이유도 그 힘의 근원도 "사랑" 이외에는 설명할 수 없죠.
다른 영화의 비슷한 복선 처리가 괜찮기에 디워의 복선 처리도 문제없다는 뜻으로 위 글을 이해하셨다면 유감이군요. 그 복선처리가 자연스러웠느냐 아쉬웠느냐 하는 문제와, 그것이 정당하냐 정당하지 않냐의 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글을 다시한번 꼼꼼히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김휘영님의 논지는 그것이 정당하다는 것입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어쩌고 하는것은 얼토당토 않다는 것이지요. 다만, 그것을 표현하는 섬세한 연출에 대해서 김휘영님이나 많은 디워 팬들도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님과의 차이가 있다면, 그 아쉬움을 넘어섰을때의 그림을 우린 벌써 마음속으로 그리며 흐뭇해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doulos17 한마디만 덧붙이겠습니다. 형돌님이 어떤 분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진중권씨가 아니라고 가정하고, 모종의 음모를 위해 고용된 알바생이 아닌 관객의 한명이라고 가정하겠습니다.
디 워를 통해, 우리사회에는 심형래류의 사람과, 진중권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꿈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 어떤 어려움과 절망속에서도 그것을 이루어내는 사람,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사람, 웃음을 주는 사람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한국은 이래서 안된다는 사람, 자신만이 옳다는 믿음에 빠져 자신의 무지와 허점을 보지 못하는 사람,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끝없이 비하하고 폄하하는 사람, 얼굴을 찡그리게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 형돌님이 차라리 진중권님이거나 알바생이길 정말로 바랍니다.. 그렇지 않다면..당신이 어떠한 사람이라는 것을 모두에게 드러내게 될테니까요. 그것은 당신에게나 우리에게나 매우 슬픈 일이 될 것이기에 마음 한켠이 저리는군요.
noro0314 doulos17 /한가지만 물어보겠습니다. 디워가 미국이나 일본영화라도 그런 애정을 가질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왜 한국영화라고 그렇게 단점에는 눈을 감으려고 하는지요?
워터 하하하하.. 지난 5월달에 김지하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거였던거야...
노로님..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문화다양성입니다.
서로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면서 풍성해지는 것.
헐리웃은 '포스'라는 개념부터 해서 항상 동양의 정신세계를 블록버스터로 구현해보고자 노력해왔습니다. 그들은 표면은 만들 수 있었지만, 내용은 만들지 못했습니다. 만들어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서편제, 천년학만 한국적인 것이 아닙니다.
진중권은 '프리덤'과 '리버티'를 결합시키는 존재입니다. 프리덤은 능력적인 차원이고, 리버티는 허용의 차원인데, 그놈은 그것을 '자유'라고 뭉뚱그리는 놈입니다. 제정신 아닌 놈이죠.
지금 제 눈에는 어마어마한 사건이 보입니다.
노로님도 그냥 속는 셈 치고 한번 지켜 보세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속아봐야 손해두 않나잖아요.
워터 저 용가리2 세종문화회관가서 본 놈입니다. 네, 재미 드럽게 없었어요. 아니 온 세상이 재미 드럽게 없었습니다. 이 악물고 봤는데요. 그리고나서 다 털어버렸던 놈입니다. 근데 지금 온 세상이 너무 재미있게 돌아가요. 가만히 지켜봐주세요..
noro0314 워터/전 이런 현상에 자꾸 황우석이 떠오릅니다. 또, 오인용의 애니도요. 김창후가 줏어온 고양이가 김창후를 괴롭히는 고참을 밤에 습격합니다. 고참이 아침에 일어나 김창후를 도 두들겨 패지요. 김창후가 고양이에게 '내 생각해주는건 고마운데, 이러다간 내가 죽겠다'라고 말하죠. 전 이번사태로 심감독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를 좋아하고 싫어하는건 각자의 자유지요...다만 김휘영씨 같이 무분별하게 남을 공격하는건 불량디빠가 결국 심감독을 죽이는데 가장 큰역할을 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워터 서양은 동양의 정신세계를 동경했습니다. 슈퍼맨,아니면 스타워즈의 포스. 그리고 동양은 서양의 자연과학문명을 동경했죠. 온통 로보트만화. 우리는 서양의 블록버스터 너무 많이 봤습니다. 그만큼 감상을 했으면, 우리것도 보여주는것이 예의죠. 그것이 서로 소통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라스트사무라이에서 킬빌에서 동양적인 것을 담아보고자 했지만, 헐리웃의 시각으로는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단지 한국영화라는 층위에서 응원하는 것이겠습니까? 월드컵때만 붉은악마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인터넷시대의 우리 손으로 홍보까지도 가능하다는 것이겠습니다. 어느선까지 전개가 될지 정말 흥미진진하지 않습니까?
워터 노로님. 연구자가 데이터 없이 리포트 쓰면, 그것을 일컬어 연구자로써의 양심과 자존심을 버린 일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저는 컴맹인데요.. 디워사태 주의깊게 보다가 bignews게시판에.. 논객연하는 놈들 다 집어치우라고까지 적었어요. 그냥지켜보세요.. 그냥.. 부탁드릴께요..
noro0314 글쎄요...전 디워를 안 좋아해서요. 서양적인 것이든, 동야적인 것이든,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영화란게 짜임새가 너무 떨어지면, 재미가 많이 반감되서요. 아닌 사람들도 있겠지만...어떤 영화건 스토리가 너무 부실하면 한계가 있지 않겠습니까? 뭐 전지현이나 김태희가 과감한 노출(완전히 벗음)을 한다해도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듯, 더구나 해외시장 나가면 별 효과도 없겠지요.
워터 제가 자유게시판에 올려놓은글들 한번 읽어봐 주세요. 마켓팅의 정신은.. 재미 없다는 사람한테까지 팔아먹어야 하는 것이니까요. ㅋㅋㅋㅋㅋ
프시케 하하하~ 댓글들 읽고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환생이란 개념 자체가 상상의 산물, 즉 환타지입니다.
조선에서 죽은 남녀가 한참 세월 지나서 미국에서 환생을 하든 몇 백만 광년 떨어진 외계 행성에서 환생을 하든, 솔직히 뭔 상관입니까?
그런 걸 이해 못하겠다는 분은, 환타지 영화 보지 마시고 그냥 과학교과서 읽으세요. ^_^
프시케 그리고 noro0314님, 님의 논리 비약에 쓴 웃음이 나옵니다. 디워는 영화이고 줄기세포 사건은 과학기술 문제입니다. 두 개가 어떻게 동일시가 됩니까? 디워가 무슨 데이터 조작이 있었으며 숨겨진 과학적 진실이라도 있습니까? 디워는 그냥 영화입니다. 디워를 보고 관객들이 재미있어하든 재미없어하든 각자 취향입니다.
프시케 심형래 감독이라는 분은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 한 편 만든 겁니다. 그게 뭔 죄라고 이번 사태로 심형래 감독님을 싫어해요? 물론 noro0314님께서 심형래라는 개인을 싫어하든 좋아하든 본인 맘이니 맘대로 하세요. 하지만 님의 주장에는 아무 논리가 없습니다.
프시케 그리고 무분별하게 특정 영화 죽이기를 한 사람은 진중권 님입니다. 그런 진중권 님에게 반박하는 논리적 글을 쓰면 그게 왜 무분별한 짓입니까? noro0314님의 주장에는 아무 증거도 논리도 없어요. 그냥 단순한 비난 욕설일 뿐이죠. 디워 재미없으면 그냥 관심 갖지 않으시면 됩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요? 님이 디워를 재미없어하든 진중권 님이 디워 죽이기를 하든, 김휘영 님이 디워 살리기 글을 쓰시든 디워 재미있게 본 관객들이 디워 편을 들던, 각자 자유 아닙니까?
프시케 그리고 심형래 감독님 덕분에 온 가족이 오랜만에 극장 가서 재미있게 즐긴 분들 많아요. 그런 분들은 심형래 감독님한테 고마워합니다. 그러니까 괴수영화 한 편 보고 즐거우신 분들, 편들어주는 분들은 관객으로서의 권리를 구현하는 겁니다. 뭔 잘못이 있을까요? 괴수 영화 한 편 보고 애국주의 광신도 취급받는 관객들 기분이 즐거운 줄 아십니까? 외국 흥행은 외국 관객들 자신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noro0314님이 자기 맘대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죠.
워터 외국 관객들 자신이 결정할 문제이나.. 지금 마켓팅이 필요해요..
올챙이 진중권 같은 지적 강간범들 땜에 저같은 일반 대중들은 모르고당하는 경우가 허다하져......서사가 없다 하는데 도데체 서사가 왜 없다 하는지 일반대중들은 그쳐 답답할 뿐입니다...토론중에 교묘히 쳐 웃으면서 답답한 대중들의 맘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모순에 빠져 떠드는 진중권 때문입니다... 진꼭지 논리에는 수긍이 전혀 가지않은 대다수의 대중들을 상대로 걔는 지 잘났다고 혼자 떠드는 형국이져....이런늠을 상대로 그가 얼마나 얼마나 무식한지를 알리는 사람이 몇몇분이신데 그중 무위는 이시대 진정한 계몽가져....
올챙이 형돌이라시는분 혹시 진중권이 아닙니까???아니면 어쩔수 없는건데 왠지 진중권티가 확나네여...글 전체를 몬보고 디워랑 반지가 서사적으로 틀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정확히는 디워 인과관계가 엉망이다 하는말을 하고 잇는거죠..서사가 없다고 하는늠이 디워의 잘못된 서사를 주장하는 모습이져...서사가 없는데 어떻게 잘못될수가 있겠습니까? 지금 내앞에 잘 몬만든 볼펜이 하나 잇는데 그것은 없는겁니까???더 웃긴건 그 볼펜이 가만보니 잘몬만든 볼펜도 아니라 오히려 그리 나쁘지 않은 쓸만한 볼편이었다는데 있습니다...이런 개판 오분전인 늠을 처치할수 잇는 사람은 무위정도가 되야 아가리 속 닫고 아무말 몬하져...형돌님 주장하는 내용이 진중권이랑 거의 일치하는데 혹시 그가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드네여..ㅋㅋㅋ지 이름으로는 감히 무위앞에 나다닐수 없는 진중권이거든여...
형돌 밥을 직접 떠먹어줘야 이해한답니까? 댓글 다는 분들 김휘영 글고 제 댓글 읽어보고 좀 댓글 다세요. 착한 이무기 = 미숙한 주인공 이라한게 김휘영 입니다. 근데 댓글에 보면 이든과 세라가 미숙한 주인공이니 어쩌니 당신들, 독해 능력은 있는거유? 제발 제발 난독증세 있는 사람들 댓글 달지 마세요. 그리고 이스라엘 만의 구세주인 예수가 기독교 문화와 전혀 관계없는 한국에서 태어났다고 쳐봅시다. 얼마나 황당할까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가요? 님들 논리대로 필연성이 없이 단순히 미국시장 공략이라는 목적하나로 미국에 환생한 겁니다. 그러니 어색할 수 밖에요. 예수가 한국에 태어난 거랑 뭐가 다른가요?
형돌 세류/ 님이야 말로 영화 제대로 봤습니까? 악한 이무기와 군단이 조선 왜 쳐들어 갔는데요? 여의주를 탈취하기 위해서 쳐들어 갔지요. 조선 부수기 위해 쳐들어 갔나요? 세류야. 너 영화라도 봤냐? 넌 나랑 상대도 안되니 걍 버로우해라.
형돌 여기 있는 대부분의 바보들이 주장하는점 -> 평론가란 나레이션 컨텐츠 제공하는 사람이다. 완전 웃기는 개소리지. 언제 평론가란 정의가 그렇게 바뀐거지? 국어사전 다시 쓴거냐? 평론가가 영화평하는 사람이지 무슨 디워 잘돼라고 전설 홍보해주는 사람이 평론가냐? 완전 기본 개념이 없으니... 제발 개념은 좀 가지고 살자. 김휘영도 마찬가지 잖아. 소설가들이 무슨 디워를 위해 존재하는 마냥... 디워한편을 위해 평론가랑 소설가가 존재해야 하는거니? 전설의고향이나 민담에 보면 이무기 전설 널리고 널렸단다. 있는거 안보고 왜 꼭 반지의 제왕같은 소설은 원하냐? 아예 국민도 디워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말해보시지? 다들 디워 안본사람은 국민도 아니라고 말이야. 그렇게 까진 못하겠냐?
워터 공부 제대로 한 사람들은 진중권 공부한 사람취급 않해요. ^^ 글고 그사람이 미학이라고 하는데요. 어느 누가 그 사람 미학을 미학이라고 불러주나요? 그냥 수사학이라고 불러요. ^^ 누가 평론가가 나레이션 컨텐치 제공하는 사람이라고 그랬나요? ^^ 누가요? ^^ 김휘영씨가 은제 그랬는데요? 미국엔 않널렸거등요? 혹시 김지하라는 이름은 들어보셨나요? ''? 생명론을 읽어보셨으리라고는 상상도 않되구요. '' 에이 세상에 말 않통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말 않통하는 국민도 엄청 많구요.. 가능한걸 시키셔야죠..
hggenius 형돌은 어떤근거로 예수가 이스라엘 만의 구세주라 하는지? 성경은 제대로 읽으 셨는지? 그리고 형돌(진 꼭지 같지만 여기선 형돌) 착한 이무기와 부라퀴가 동급? 군단과 이든과 동급? ㅋㅋㅋ 이든이 목걸이의 힘을 처음부터 사용할줄 알았다면 그렇겠지만 이든은 영화 마지막에 가서야 그것도 의식적으로서가 아니고 분노에 의해 목걸이의 힘을 각인 시킵니다. 즉 목걸이가 각인 되기 전까진 이든의 능력치는 0인거죠. 그런식의 논리라면 반지의 제왕에서 암흑 제왕의 힘을 봉인 시킨 절대 반지를 담은 반지를 프로도가 가지고 있는데 그럼 프로도>암흑제왕? 이런 식입니까? 프로도가 암흑제왕의 힘을 봉인 시킨 반지를 가지고 있어도 반지의 힘의 극히 일부만 사용할수 있죠(투명하게 하는것) 형돌( 진꼭지님) 이든 = 군단 이 영화 마지막에서야 성립하지 처음부터 성립 되지 않습니다
형돌 doulos17 / 악한 이무기랑 선한 이무기랑 속성(착하다, 악하다)만 다르고 같은 능력을 가진 존재 입니다. 1번싸워서 악한 이무기가 이겼다고 악한 이무기는 강력한 적이 되고 선한 이무기는 미숙한 주인공이 된다는말? 그리고 이든의 각성? 이든이 각성하는 장면이 어디 나온나요? 차라리 적군의 바보스런 행위(심장을 찌르는것도 아니고 목을 베는 것도 아니고 가슴 중앙을 왜찌를까? 뼈에 걸릴텐데.) 라고 표현하시죠.
자꾸 같은말 또하게 하지 마세요. 과연 누가 강력한 적이고 누가 미숙한 주인공일까요? 악당대장과 동등한 능력을 가진 선한 이무기한테 미숙한 적이란 말이 통할까요?
'남자 주인공이 펼치는 활약'? 그런게 어디 있었나요? 적군의 자멸이란 말을 하시는게 낫지 않을까요?
워터 글구 영화평론두 전문영화평론가들이 있구요. 언론이나 포털에다가 기고하는 평론가들이 있는데요.. 갸뜰은 걍 영화 홍보한답시고, 별이나 떤지는 사람들이구요. 네오이마주 이런데 가셔서두 읽어보세요. 백선생이란분은 영화 '태풍'보시구 딱 한마디 평으루 끝내십디다.. '않본걸로 하겠다.' 그런데두 있거등요.. 수준뽀록나게 왜 그러실까?
형돌 hggenius / 그럼 아닌 증거를 대봐요. 예수 탄생당시 기독교란 신앙 가진 나라가 있었나요? 혹시 또 기독교란 말 자체를 두고 꼬투리 잡을지 모르니 그냥 이스라엘과 같은 신앙을 가진 나라가 있었나요? 이 기회에 어디 내가 몰랐던거 한번 배워보죠.
워터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예수의 죽음으로 유대인들만의 기독교가 세계의 기독교가 되었으나, 그것은 백인들만의 세계였다. 라구요..
형돌 워터 / 위에서는 평론가의 역할이 제대로 된 나레이션 컨텐츠 제공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전문영화평론가 어쩌구 저쩌구 ... 딴말하시네. 꼬리내리는겨?
워터 언제 그랬는데요? ''?
hggenius 또 부라퀴 + 여의주 > 부라퀴 ? 에혀 이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 ㅠㅠ 마지막 장면에서 부라퀴와 착한 이무기가 1:1로 싸우는 장면에서 둘간의 우열은 분명 합니다. 그럼 여기서 알고 넘어 가야할건 부라퀴와 선한 이무기의 목적 입니다. 부라퀴는 여의주를 차지 하려는 놈이고 선한 이무기는 이를 지키는 입장입니다. 여의주는?? 형돌(진 꼭지 같지만)의 말 같이 선한 이무기에 + 되는 힘의 요소가 아니라는 말이죠. 즉 선한 이무기의 혼자 힘으론 그의 역할인 여의주를 지키지 못한다는 의미 에서 김평론가 께서 미숙하다고 말씀 하신거 같은데 조선 시대에도 선한 이무기는 여의주 보호에 실패 하고 여의주는 스스로 목숨을 끊죠 즉 그리고 영화 마지막 장면에 새라가 한말 어짜피 지금 도망 쳐도 이 일은 끝나지 않을 거라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그 순간 에서야 여의주로써 선한 이무기에 힘이 된거지요. 형돌의 말을 보면 어케 영화 마지막 결말을 가지고 영화의 전제로 깔아버리는지 바로 위에 댓글에서 사람들에게 비아냥 거리는 폼이 어쩜 진꼭지를 닮았는지 ... 제발 진중권식 사고는 버려주세요.
hggenius 그럼 불교는 인도인들 만의 종교 입니까? 석가 이전에 불교는 없었는데요?? ㅋㅋㅋ 맞나요?
hggenius 형돌은 디워 이해한건지가 궁금 하네요. 디워가 단순한 구조이긴 하지만 중간중간 짤린 부분이 많아 이해력이 없는 사람들(형돌?)은 이해하기 힘들죠
hggenius 그리고 난 디워 관련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종교 얘기를 하시니 이건나참 님이 말한 종교는 기독교가 아니라 유대교를 말씀하신거 같습니다. 유대교가 믿는게 형돌이 말하는봐죠 유대인들의 구원자가 오신다. 하지만 그건 유대인들의 해석이죠.
hggenius 그리고 사실 형돌님의 글중에서 첫 글만 일고 반박글 썼습니다. 그거 하나만 읽고도 논리도 없고 자기 혼자 소설쓰는 사람이구나 생각이 들어서요. 흠 점심 시간이 이미 끝나 버려서 돌아가야 하는데 형돌님의 답글을 기다리며 그리고 더 애기하고 싶으시면 메일로 보내 주세요. 환영입니다.
doulos17 nore0314//"디워가 미국이나 일본영화라도 그런 애정을 가질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왜 한국영화라고 그렇게 단점에는 눈을 감으려고 하는지요?"라고 물어주셨군요.
님의 첫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오"가 되겠네요.
제가 하고있는 말이 단점에 눈을 감으려는 행위로 보이셨다면 유감이군요. 저야말로 그 누구보다 그 단점을 아쉬워하는 사람입니다. 팬카페에 "디 워 아쉬운 점은" 이런 게시판이 있는데, 그런 게시판을 만들고자 건의했던 사람도 저이고, 거기에 엄청나게 긴 글을 써놓은 사람도 저입니다. 뭐 별로 관심은 없으시겠지만 말이죠.
그야말로 관점이나 태도의 차이라고 할까요. 물컵에 물이 반이 차 있을때 바라보는 두개의 시선 말입니다. 전 저같은 평범한 관객이 느낀 그런 아쉬운 부분들이 보완되었을때, 지금 당장 헐리웃이 자랑하는 반지의제왕이나 스타워즈에 비견할만한 헐리웃 A급 영화가 될 수 있었음에 아쉬웠습니다. 그러한 수준에 근접한것 만으로, 차기작에서 그것들을 극복하리라는 희망을 준 것 만으로 한낱 영화 따위가 이런 애정을 가지게 만들어주는군요.
doulos17 형돌//당신은 확실한 진중권류 이군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난독증 운운하며 깎아내리는것, 위 글에서도 나온 우김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사례라는것.
논지와 예시가 엇박자라는 것 조차 똑같군요. 여러 저자에 의해 오랜세월동안 쓰여진(40여명, 1000여년이라고 알고있는데 정확치는 않음) 여러 책들을 구약성경이라는 이름 아래 묶어서 볼 수 있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일관성 때문인데, 그중의 대표적 하나가 메시아에 대한 500여개의 예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단순히 그가 온다는 식의 예언이 아니라, 태어날 장소까지 포함한 자세한 예언으로 알고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하니 덧붙이지 않겠습니다.(가까운 교회에 문의하세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한국에서 태어난 누군가가 예수라고 주장한다면 님 말대로 황당한 사건이군요.(실제로 그런 사람 많다고 알고있습니다.) 거기에 대해 황당함을 주장하신다면 저도 말리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든이 미국에서 태어난거랑 예수가 한국에서 태어난 것이 뭐가 다르냐고 우기신다면 참으로 곤란하군요.
doulos17 과거 하란과 나린이 미국에서 태어난 것에서 "필연성"이나 "개연성"을 찾으시는 것이, 그 이유로 원래 조선 사람이었는데 어떻게 미국으로 바뀌어서 태어난 것이냐고 지적하시는 것이 처음엔 웃겼는데 두번 들으니 슬슬 짜증이 나는군요. 환생에는 국적이란 개념은 커녕, 성별이나, 심지어 종족조차 뛰어넘는 개념입니다. 전생에 인간이라고 해서 후생도 인간이 되는것이 아니고(그걸 위해 업보를 줄이라고 말하죠), 전생에 남자라고 해서 후생에서 남자가 되는것도 아닙니다.
굳이 개연성을 따지시겠다면, "한국 사람이 미국 사람으로 환생할 수 있다", "한국 사람은 한국사람으로 환생해야한다" 이 두 주장중 무엇이 더 맞는 개념인지 가까운 절에 문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후자의 주장이 환생의 개념에 맞는것이라는것이 밝혀진다면, 제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과드리겠습니다. 반대의 경우 님도 그렇게 하시겠나요?
형돌 hggenius / 영화를 봐놓고도 영화 내용이 뭔지도 모르는 넘들하고 이바구 하려니 참 입이 아푸구나. 선한 이무기가 여의주를 지키는 역할이냐? 영화에 그렇게 나오디? 영화는 봤냐? 선한 이무기도 여의주 차지하려는건 마찬가지잖아. 너 영화는 봤냐? 영화 내용도 모르는 넘이랑 내가 놀아줘야해? 넌 그냥 저기 찌그러져 있어라. 그리고 불교가 석가 탄생시까지 인도인만의 종교지 그럼? 다른 나라에 불교가 있었냐? 넌 니가 말해놓고도 니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지? 내 말에 부정은 하고 싶은데 그럴수록 니 주장은 점점더 모순에 빠져들고 미치겠지? 예수 탄생당시 이스라엘과 같은 신앙(유대교)을 가진 나라가 또 있었는지 말해보라니깐 그말은 왜 못하냐? 넌 그냥 조용히 찌그러져 있어라. 영화를 보고도 내용도 모르는 넘들이랑 일일이 상대해줄 시간이 없구나.
doulos17 그다음 리플은 반말에다가 기본적인 예의까지 갖추지 않았으니 나도 굳이 예의를 갖추진 않겠어. 그래, 니 말대로 부라퀴와 그 군단은 여의주를 탈취하기 위해 쳐들어갔지. "그 과정"에서, 남자나 아이들은 무참히 살해하고 여자들만 모아 문신을 확인하지. 목적이 여의주고 그것을 위한 과정에서 저질러진 수많은 악이, 그들이 어떠한 존재인가 보여주는 것이쟎아.
세류님의 논지는 간단해. 그들이 악이라는 것이지. 그게 그렇게 이해하기 힘드니? 니 리플에서조차 "악한" 이무기와 군단이 쳐들어갔다고 말하면서, 그들의 목적이 (순수한?) 여의주 탈취이고 조선의 파괴가 아니므로 악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거야? 말을 할수록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구나.
형돌 doulos17 / 한마디만 해주마. 제우스가 한국에 환생했다 해봐. 생뚱맞지? 석가가 한국에 탄생했다 해봐. 생뚱맞지? 만약 용이 미국에 환생했다. 이건 전혀 문제될게 없어. 왜냐? 용에 관한 전설은 전세계에 다 있거든. 근데 이무기 전설은 우리나라만의 전설이야. 우리나라란 풍토에서 존재하고 의미를 가지고 신앙의 대상까지 되고 있는 존재지. 그런 이무기가 아무런 이유도없이 대뜸 미국에 나타나는데... 뭐가 전혀 안이상하냐? 그리스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제우스란 존재가 우리나라에 환생했다는 것과 같은 황당함이 아닐까? 하다못해 흡혈형사 나도열에서도 드라큘라의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왜 한국에 나타났는지 초반부에 시간을 들여 설명한단다.(그 자체의 말이 되고 안되고를 떠나서 말이지.) 우연성 -> 필연성 이게 현대소설의 기본이란다.
doulos17 그 다음 리플도 반말이구나. 거기에, 너보다 훨씬 논리적이고 예의바른 사람들을 바보들이라 지칭하면서.
디워에 대한 김휘영님의 비평은, 단점에 대한 지적 부분만 떼어놓고 보더라도, 내가 본 어떤 비평보다 정확해. 내가 느낀것도 그것이었어. 감탄이 감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느낄수 있었지만, 그것이 깊은 공감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그러한 단점 이상의 의미와 의의를 지니고 있다. 진꼭지가 말하던, 그러나 그와 다른 수많은 평론가들은 전혀 하지 못했던 피드백 말이야.
더욱이 김휘영님은, 그 간격을 채우는걸 도와주는 작은 역할을 감당하고 싶다고 하셨지. 난 그부분에서 너무나 감동했는데. 디워가 개봉하고, 한달여의 시간이 지나서야, 비평가로서의 태도를 가진 첫번째 사람을 발견했으니까.
doulos17 소설가들이 디워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논지를 바꿔서 공격하는 것까지 진꼭지구나. 정말이지 신기하다..옛말 틀린거 없네, 유유상종이라고.
원문을 다시한번 잘 읽어보기 바란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시리즈는, 전설을 모티브로 하여, 뛰어난 소설적 재구성으로 탄탄한 스토리의 기반을 토대로, 영화로까지 그 완성도가 이어진 것이라고. 니 말대로 전설의 고향이나 민담에 등장하던 수준의 이야기를, 그 모든 중간과정을 생략한채 내어놓았다는 것이 기특할 정도로 영화에서 업그레이드하여, 현대감각에 맞게 그려내고 있지. 심형래 감독 혼자서 황무지에서 이러한 성과를 이뤄내는동안, 스토리의 부실함을 이야기하는 그 수많은 사람들이, 정작 그 누구도 반지의제왕, 해리포터와 같이 전세계적으로 인정받을수 있는 탄탄한 스토리의 소설을 통해 그 기반을 닦아주지 못했는가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어.
doulos17 국민도 디워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말해보라고.. 논리의 비약조차도 진꼭지구나. 틀린 논지를 확대하여 적용시키니 또다른 틀린 주장이 나오는 것이지.. 정말이지 대꾸할 가치조차 느껴지지 않는구나.. 대꾸하지 않으면 자기가 이겼다고 생각하고 뿌듯해할 것이고. 접촉사고 났을때, 상대방을 윽박질러서 제압해놓으면 이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 하지만 정작 침착한 사람들은 증거사진들을 찍고 목격자를 확보해서 보험사와 경찰이 판단하도록 맡겨두지. 이러한 글에 달린 이러한 리플조차 기록으로 남겨서, 그때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웃기지도 않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후세에 전해주고 싶을 정도야.
noro0314 프시케/ 황수석과 디워가 비슷하단건 둘다 집단주의적인 광기가 있다는 점입니다. 단지 영화인데 비판하면 비애국자, 죽일놈 취급 받았었습니다. 진중권이 디워 죽이기한다는데, 디빠들이 한짓은 생각안합니까? 영화매체나 기자들이 디워를 스토리는 부실하고, 씨지는 볼만한 영화라거나 B급 영화란 표현을 했다는 이유로 사이버태러를 당했지요. 그걸 본 이송희일 감독이 그런 집단주의적인 광기에 화냈다가 엄청난규모의 비열한 사이버태러를 또 당했습니다. 그리고 100분 토론한 거구요. 진중권이 비판한건 디워보다는 이런 디빠들의 만행입니다. 그걸 얘기하기 위해 디워의 스토리구조는 허술하다고 말하는것이 잘못된것은 아니라는걸 증명하려니까 서사구조얘기가 나온거구요.
noro0314 심형래가 영화만든것 가지고 뭐라하는건 아닙니다. 내가 심형래가 싫어진 이유는 그가 지금까지 많은 거짓말을 했고, 디워마켕팅 하면서 디워 얘기만 하면되지, 왜 자꾸 다른 영화를 씹느냐는 겁니다. 그렇게 자신이 없는건지, 아님 디빠들한테 배운건지...
noro0314 김휘영의 디워 살리기도 디워의 장점을 말하기보다 다른 영화나 비판한 사람들을 악의적으로 비난합니다. 디워를 칭찬하고 싶으면 디워의 장점을 얘기해야지 왜 자꾸 다른 영화를 끌어들이는 거죠? 서사란 개연성과 인과성에 따른 사건전개의 시간적인 흐름이란 말입니다. 진중권이 말한 서사란게 바로 이겁니다. 토론할 때도 이뜻으로 말했구요. 그런데, 김휘영은 이런 사전적인 의미를 무시하고 다른뜻의 서사를 가지고 와서 진중권의 말을 악의적으로 왜곡,비난합니다. 당연히 김휘영은 욕먹어야죠.
doulos17 그다음 저에대한 리플에서 다시 존대말을 써주시는군요.
선과 악의 대립구도에서 악은 더 강한 힘을 가지고있다는 공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싸움에서 악한 이무기가 이겼다는 것이 그것을 (논증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여주는 것이구요. 그 싸움에서 부라퀴가 이겼다는 사실이 악이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인가요? 정말 답답하군요, 눈으로 보이는 사실을 보이지 않는다고 우기는 것이.
속성만 다르고 같은 능력을 가진 존재라는 논지의 근거는 무엇인지요. 둘다 이무기라서? 풍파고 쌈장하고 봉사활동 1등인 학생이 싸움을 붙게 되었는데, 속성은 다르지만 같은 학교 학생이니까 같은 능력을 가진거라고 우기시는 것 만큼이나 웃기군요.
더 강한 힘을 가진 악에 의해 선은 철저히 제압당합니다. 새라와 이든은 묶여있고, 발키르는 부라퀴에게 패하죠. 선의 세력은 미숙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전설에서 예고된, 남녀주인공에 대한 설정과 복선에서 예고된 일들에 따라, 선의 세력은 그것을 극복하고 권선징악을 실현한다는 공식을 또한 철저히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설명해주는 것입니다.
noro0314 doulos17/ 그게 바로 애국주의란 겁니다. 애국주의가 집단주의가 되는 거구요. 애국이 나쁘다느거 아닙니다. 자기가 애국하고 싶으면 하면되는거고, 디워 좋으면 좋아하면 되는 겁니다. 왜, 영화재미 없다는 사람을 죽일놈으로 비난하는 겁니까? 디워개봉 초기때 상황 기억 안나십니까? 진중권이 말했죠? 왜 말을 못하게 하냐고? 말만하면 죽일놈되고 사이버태러 당합니다. 이런 현상이 싫다는 겁니다. 가족끼리 보고 만족했으면 되는거지 다른 사람 욕할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올챙이 유대교가 기독교냐???웃긴사람이네.형돌..ㅋㅋㅋㅋ예수가 죽은 이후 4대 복음서가 생기고 4대 복음서중에서 나머지 세개의 복음서를 거의 집대성하다시피한 요한복음서......이 4대복음서의 내용이들 특히 요한이만 놓고 봤을때 예수가 죽고 그의 뜻을 이쪽저쪽서 설파하고 댕기면서 만들어진게 기독교입니다...이것이 왜 유대인들의 종교라고 생각하는지..ㅋㅋㅋ진중권이는 기독교 신자로 알고 있는데 형돌은 기독교 개념도 모르거 계시네......설마 형돌하고 진중권하고 틀린사람인가????참 알다가도 모를 중권이네요...참고로 저는 한국기독을 개독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ㅋㅋ
세류 형돌/ 진짜 바보네? 여의주를 갖기위해 인고의 시간을 기다리는 이무기가 선한거고, 그 여의주를 갖기위해 폭력을 서슴치 않는게 악의 이무기란다. 너야말로 하나하나 다 설명해줘야하는구나. 유추를 못하는건가??????
doulos17 이제는 영화 장면을 설명해주고 있어야 한다니.. 김휘영님이 느끼신거와 똑같이, 여기서 이런 얘기들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나 개탄스럽습니다..
그다음 리플에서 다시 반말로 돌아왔구나. "영화를 봐놓고도 영화 내용이 뭔지도 모르는 넘들하고 이바구 하려니 참 입이 아푸구나." 내가 너에게 하고싶은 말이 바로 그거다. 사실은 손가락이 아프지만 ㅡㅡ;;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말하는 것은 시간낭비다..나의 인생철학중 하나이지. 누가 옳은 것인지는, 이 글들을 읽는 사람들이 판단해줄거야. 이미 네 의견에 대한 반대 견해를 피력했고, 거기에 대한 제대로된 재반박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저 흙탕물 싸움이 될것 같구나. 지켜보고 있을게.
doulos17 noro0314//님이 정의하시는 애국주의가 뭔지 모르겠군요. 영화를 보고 나서, 단지 영화일 뿐인데, 한국 영화라는 것이 자랑스러웠고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참 뿌듯했습니다. 제가 느낀 이 감정을 애국주의라 정의하신다면 거기에 대해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애국주의가 집단주의가 되어 영화 재미 없다는 사람 죽일놈으로 비난하고 있다는 평가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군요. 오히려 영화를 재밌게 본 사람들을 바보에, 폭도에, 정신병자로 비난하고 있지 않나요? 제가 볼땐 소위 말하는 디빠 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 디까가 집단적입니다. 미디어의 권력을 등에 업은 일방적인 모욕들을 저와 디워팬들은 들어와야 했습니다. 진중권씨가 쓴 기사는 포털사이트 메인에 올라오지만, 김휘영씨가 쓴 글은 초기에 검색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doulos17 디워 초기때 상황,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모든 언론과 비평가들에게서 쏟아지던 그 지적 다구리들. 제3자의 입장에서 보는것 만으로도 눈물이 날 지경이더군요. 제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였을때, 그 모든 공격들은 참으로 부당한 것이었기에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죠. 저의 논리와 견해를 디워 팬카페에 올리더라도, 저보다 논리적이고 좋은 글들이 수없이 올라와도, 그것은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했으니까요.
doulos17 님이 말씀하시는 집단주의는 그야말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입니다. 물론 집단적으로 사이버테러를 자행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지적하신다면 저 또한 수용합니다. 하지만 수많은 디워팬분들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고, 이 영화와 관련한 수많은 논쟁과 공격에 속상해하고 있으며, 한 영화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미디어로부터 모욕을 당하고 있고, 그러한 우리의 입장을 변호해주는 김휘영씨와 같은 분의 글을 읽으며 통쾌해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님이 하신 말씀과 제가 하는 말의 핵심은 사실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영화의 재미라는 것은 100분토론을 통해 논리적으로 증명해내는 문제가 아니죠. 그것을 받아들이는 관객들에게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우릴 그냥 내버려두라고..이것이 님과 제가 공통으로 하고싶은 말일지도 모르죠.
세류 비평가는 대중에게 정보를 주어야합니다. 의무입니다. 그런데 지식인이며 비평가라는 사람이 정보는 아예 차단하고 마이너스 적인 정보만 대중에게 제공했습니다. 그런데 대중들이 직접 보니 얻었어야 할 기본적인 정보조차도 매몰시키고 수긍하기 어려운 혹평만 있는 것입니다. 대중들은 자신에게 유익한 정보를 얻지 못했거나, 자신이 보아도 훤히 보이는 정보를 제공 받지 못했더나, 정보 자체를 차단 당했거나, 정보를 분석해서 유익한 가공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배운놈들 때문에 화는 내는 것입니다.
magivgun1 저는 심형래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디워에 대한 서사구죠 와 구성 등을 짚으며 자꾸 오락 영화를 예술영화로 보려고하는 경향이가진 사람들이 많은 듯
하여 한 말씀 드립니다. 우선 디워는 절대 서사 구조 나 구성등에 얽매인 영화가 아닙니다.
서사구조 라는 부분에서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정의 해야 하는지 혼동 할 때가 있는데 오락 영화나 괴수
영화에서 서사구조 란 그저 그 이야기를 존재 가능하도록 이해 시키는 장치에 지나지 않습니다.
magivgun1 그런 면에서 볼때 디워는 일본의 고지라 와 마찬가지로 방사능의 실험에서 발생한 돌연변이 괴수 라는
단순한 고지라의 존재 이유 와 너무나 흡사합니다. 이무기는 한국의 전설입니다. 말 그대로 본적도 없으며
그저 그런것이 있었다는 소문 이나 신화에 불과했던 것이죠
실제로 이무기는 역사 의 문헌 보다는 조선인 들 특히 토테미즘 사상이 강했던 그 시기에 악인은 이무기가
잡아간다는 일종의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만들어낸 신화적 동물입니다. 중국에서는 잉어가 오랜 시간이
지나면 용으로 승천한다고 그래서 잉어의 입 쪽에는 한쌍의 수염이 있다고 믿는다고 합니다 그런 예를 보면 용이라는 것이
얼마나 그저 막연한 신화속의 동물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magivgun1 그런데 이 영화를 가지고 서사적 구조가 어떻느니 주인공이 하는일이 없다느니 하는 건 일단 신화적인
내용에서 이야기의 역사적 사실이나 존재 하는 이유를 밝히라는 말이나 다름없으며 괴수 영화를 놓고
주인공이 하는 일이 없느니 하는 말은 괴수 영화에서 괴수가 주인공이라는 상식적인 부분조차 간과하고
있다는 결론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더욱 문제가 되는 일은 바른 토론이나 평은 나중에 발전을 가져오지만
요즘 소위 말하는 디워 까 나 심빠라는 부류들은 영화를 보지도 않고 자기들 끼리의 싸움 자체를 재미있어
하는 양상이 많이 보이고 있더군요 언젠가 심형래를 그렇게 지지 하는 유저와 간단히 채팅을 해 봤을 때
그 사실을 알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심형래를 지지 한다는 사람이 우뢰매나 하다 못해 디워를
한번도 보지 못했던 초등생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말았던 거죠.
magivgun1 일단 디워는 흔한 괴수 영화로서의 가치를 지녔으면 지녔지 영화를 깎아내리고 끌어올려줄 어떤 이유 같은
것은 없음을 밝혀 둡니다
다만 저 또한 심형래를 지지 하지만 그건 디워라는 영화를 떠나서 그가 보여준 결과 물에 대해 서 임을
밝힙니다 심형래는 아직까지 우리 영화계가 도전하지 못한 헐리우드 의 성벽을 정면으로 치고 들어갔으며
여느 우리 나라 영화 감독들 처럼 자신의 입지와 유명세로 은근슬쩍 자리 매김 해보려고 했던 그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용가리 가 망하고 나서 그는 홀로 미국에 건너갔고 당시만 해도 투자자 들이
그를 외면하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미국에 작은 컨테이너 식의 사무실 한칸에서
숙식을 해결했습니다.
magivgun1 물론 본 적이 없으니 그랬는지 는 확실히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용가리 이후
그가 신 지식인 상을 받은 이후 용가리의 흥행 실패 는 그의 인생조차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무서운
폭풍이었습니다 저 같았으면 아마 모든게 끝났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아는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얼굴을
보이면 돌을 던지는 사회의 시선을 꿋꿋이 받아낼 대담한 사람은 몇 안될테니까요
그러나 그는 미국에 건너가 투자자를 물색하고 오로지 데모 필름 하나로만 승부수를 띄웠습니다
여러 영화사들을 찾아다니며 데모 필름을 보여주고 오랜 시간 끝에 투자자 를 찾아내고 조금씩 조금씩
영화를 찍어 오늘에 온 것이지요
magivgun1 저는 디워의 서사적 구조나 스토리의 개연성 등을 따지기 이전에 그 많은 스탶들을 등에 엎고 당당히
우리나라 cg 기술을 헐리우드에서 인정할 만한 것으로 업그레이드 시킨 그 의지와 노력에 감탄할 뿐입니다
물론 cg 기술은 이미 우리나라가 세계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만한 수준에 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 전반부에 보여지는 cg 기술은 제품 선전용 이나 게임 동영상 과 같은 것과 성격을 조금 달리
하기에 괴물 한 마리 만들어내려면 미국의 기술력을 빌려야 하는 우라나라의 실정이 있음을 여러분들도
아시리라 믿습니다 괴수 영화에서 cg는 실제 인물과 배경과의 cg 매치가 얼마나 자연스러운가에 해답이
있습니다 그건 여러 영화사 와 여러나라가 시도를 했어도 쉽게 빛을 보지 못했던 가장 어렵고 피곤한 작업이었습니다
magivgun1 솔직히 말해 우리나라 에스 에프 영화는 거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니 갑작스레 괴수 영화 하나 만들어내려
하면 순수 우리 기술이 아닌 외국의 뛰어난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것이고 봉 준호 감독이 괴물 한마리에
제작비 반을 외국 기업에게 퍼나른 이유일 겁니다
그런 우리나라 실정에도 불구하고 심형래는 당당히 그간 쌓인 노하우와 그와 함께 하기를 바라는 스탶들과
뭉쳐 당당히 국산 cg 기술을 디워에 선보였고 그 반응은 폭발 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영화를 떠나서 인생의 마지막 기로에 섰던 그가 보여준 인생 대역전기를 존경할 뿐이며
그 내용은 누구나 공감하기에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magivgun1 디워가 상업영화가 되었던 예술영화가 되었던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영화를 당당히 헐리우드에
입성 시키고 순수 기술 만으로 세계인들을 놀라게 한 그의 저력을 인정해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위 같은 일은 아마 심형래가 아니라 다른 감독이 해냈다고 해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을 겁니다
그저 대중에게 먹힐 아이템 하나를 찾아 지금은 이게 대세느니 뭐느니 하면서 끝까지 우려먹기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을 보면 아직도 실소를 금할 수 없으며 심형래라는 한 사람이 지금까지의 끼리 끼리 먹기 식,
무사안전 제일 주의에 물든 관행적 요소를 페지 시킬수는 없겠지만 이번 결과로 그 가능성을 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를 응원합니다
형돌 doulos17 / 선한 이무기가 어딜봐서 미숙한 주인공인가? 차라리 이든이 미숙한 주인공이라 했음 말이라도 맞지. 악한 이무기가 선한이무기를 이겼다고 악한 이무기는 '강력한 적'이 되고 선한 이무기는 '미숙한 주인공'이 되는가? 이게 김휘영이 반지의 제왕에서 비교한 '사우론' <-> '프로도, 레골라스, 아라곤' 과 같은 관계가 성립되는가? 차라리 악한 이무기를 도망치게 만든 아파치 헬기 몇대가 더욱 강력한 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같은 이무기끼리 싸움에서 누군 이기고 누군 졌다고 한쪽은 강력한 적이 되고 한쪽은 미숙한 주인공이 되고... 정말 웃긴 비유구나. 사우론과 프로도와의 능력차가 악한 이무기와 선한 이무기 사이에 있는가? 그정도 능력차이가 있어야만 '미숙하다'란 말이 성립하는 것이다.
noro0314 doulos17 /디워의 어떤점에 가슴이 뭉클하세죠? 영화가 너무 감동적이라서? 아님 헐리웃의 기술력을 어느정도라도 따라가서? 왜 단지 영화일뿐인 디워를 비판하면 싸이버테러를 당해야했죠? 이런게 애국주의가 아니라면 뭐가 애국주의입니까? 단지 영화한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따지신다고요? 진중권이 왜 화를 냈는지 모르시겠습니까? 디워의 이상현상, 사회적인 문제점을 보고 화를 낸겁니다.
noro0314 처음 평론가들이 디워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셨다고요?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짜집기평론을 보신겁니까? 평론가들의 의견은 대체로 일치했습니다. 스토리구조는 빈약하나 씨지는 볼만하다. 이게 그렇게 부당한 대우입니까? 김휘영이 처럼 말도 안되는 소리 늘어놓지 않으면 부당한 대우인겁니까? 위에 말했듯 평범한 평론에 대해 디빠들이 미친듯이 공격했고, 거기에 이송희일이 화내고, 이송희일이 아작나니깐, 진중권이 나온겁니다. 며칠전까지만 해도 인터넷에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며칠전까지의 일도 기억 못하십니까?
noro0314 평론가들도 디워를 오락영화로 평가했지, 예술영화의 잣대를 들이댄적 없습니다. 디워가 B급 오락영화라고 한게 지적 다구립니까? 그거쓴 기자블로그가 폐쇄될정도의 잘못을 한 겁니까? 이건 집단주의의 광기가 맞습니다. 황우석 때 황우석을 비판하거나 제대로 검증해야된다고 했던 사람들 어떻게 되었습니까? MBC가 어던일 당했습니까? 이번 디워 사태때 심형래나 디워 비판한 사람들 어떻게 당했는지 기억 안나십니까?
noro0314 진중권은 개인주의자입니다. 황우석때도 황우석 비판했다가 엄청 당했고, 이번에도 디워 비판했다가 많이 당했습니다. 김휘영인 디빠들 등에 업고 진중권 까고 있지요. 누가 더 비열합니까? 진중권글은 메인에 올랐는데, 김휘영은 찾을수도 없었다구요? 그건 진중권은 유명하고, 김휘영은 무명이기 떄문입니다. 난 디빠들이 하두 이상한글 퍼날라오길래 도데체 누군지 찾아서 여기까지 온겁니다. 그전엔 김휘영이가 누군지도 몰랐구요.
세류 형돌/ 왜 선한 이무기이고 악한 이무기 인지는 이제 이해되어서 아무말도 없구나. 그럼 이 글에 달린 너의 의견은 접은 걸로 알겠다.
워터 noro0314/진중권도 무명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는 독설과 패러디 그리고, 그럴싸한 미학오딧세이같은 책 판매를 병행했었죠. 그는 1999년에 자신 스스로의 입으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게릴라전을 계속 할 생각은 없다. 진지가 구축되면 그 다음부터는 정규전을 할 생각이다.'라구요. 그러나, 그는 아직도 그런짓을 계속합니다. 그의 인터넷에서의 글쓰기는 악성댓글문화의 전범이 되어있죠. 평론가들의 의견이 대체로 일치 했습니다. 아울러, 진중권에 대한 평가도 대체로 일치하고 있습니다. 진중권을 공박해온 사람들은 김휘영님 말고도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저 역시도 진중권처럼 말장난해서 매체권력을 지향하는 짝퉁 인문학자들을 무쟈게 싫어하구요.
워터 물론, 초딩체 어법은 못따라가고 있습니다만, 초딩체어법과 낚시법은 진중권식 권위주의를 발동시키는 야전교범에 비하면, 차라리 귀엽기라도 하죠.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그때 그런 글쓰기를 발붙이지 못하게 했어야 했다고..
noro0314 워터/ 누구든 무명시절이 있었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진중권은 유명인이고 김휘영은 아직도 무명이란거죠. 진중권은 김휘영이 어느 정도 레벌이 될기전엔 상대도 하지 않을겁니다. 진중권정도 되는 사람이면 비판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많겠죠. 하지만, 제가 기억나는건 강준만과의 싸움정도구요. 진중권을 공박했다는 사람들의 글도 한번 보고 싶군요. 잘된 것이 있으면 추천바라구요, 단, 김휘영 정도의 수준은 말구요. 전 진중권의 책을 여러권 읽었지만, 물론 이념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가 크게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못해봤습니다. 스타일이 싸가지가 없다는데 그런점은 단지 부수적인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그의 논리가 크게 어긋나는건 아직 못 봤습니다. 물론 저와 생각이 다른 부분도 있지만, 그거야 각자의 생각은 다 다르니까요.
noro0314 예전에 도올이 성철스님부터 마구까기 시작하더니 결국 유명인이 되더라구요. 그때도 전 도올이 마음에 안들어 욕도하고 그랬지만, 그정돈 이해해 줘야 된다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단, 지나치거나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혹세무민한다면 그건 잘못이라는 겁니다. 진중권을 까건 도올을 까건 어차피 지식인들이란게 그런식으로 논쟁하는게 당연하지요. 다만 김휘영은 진중권을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있는것이 화가 납니다. 진중권이 말한 서사는 교과서적인 의미이고, 토론을 봤다면 그 의미로 쓰인것을 충분히 알수 있는데, 김휘영은 자신이 만든듯한(문학적으로 다른 뜻으로 쓰일수도 있지만 제가 그런건 잘 모릅니다) 다른 의미의 서사란 단어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진중권이 악의적으로 디워를 비난했다고 사실을 왜곡합니다. 진중권이 악의가 있었다고 해도 그가 말한 내용에서 비판해야지, 내용을 왜곡해서 비판하는건 스스로 평론가라고 하는 사람이 할짓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워터 noro0314/ 저는 진중권이 프리덤과 리버티의 짬뽕으로써의 자유를 요구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프리덤은 능력이라는 층위에서의 자유라고 할 수 있고, 리버티는 허용된 권리의 차원에서의 자유입니다. 프리덤에서 깨지면 그는 바로 리버티를 꺼냅니다. 리버티의 한계를 뛰어 넘을때는 여지없이 프리덤을 꺼내들죠. 그것이 바로 그가 주장하는 자유의 실체예요. 모든 사람들은 계를 가집니다. 스스로 넘어서지 않는 것이죠. 저 역시도 절대 글 적을때 제 이름의 브랜드 가치 올리는 짓 않합니다. 철저하게 변방적 글쓰기만 고집하죠.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 스스로 계를 지녀야하고,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중권은 완전자유주의자예요. 도올은 절대 성철스님을 까면서 유명해진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도 깐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시는데요. 절대로 인문학은 타인을 공격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진중권의 악의. 의도라는 의미인데요. 그것은 누군가(?) 심심한놈이 빅뉴스 게시판에 올려놨더군요. 안타깝게도 진중권은 레벨 낮아요. 레벨도 낮은 놈이 이전투구 쌩쑈 벌이면서 유명세 얻고 책팔아먹고 살던 놈이예요.
워터 그는 정규전을 하기 위해서 진지가 필요했던 넘이 아니라 진지가 탐이나서 게릴라전을 한 놈이구요. 정규전의 정자도 모르는 넘이예요. 사람들은 그래 저놈이 자기 진지 구축할때까지만 참아주자. 정규전도 잘 할꺼야.. 그랬었는데요.. 갈수록 밝혀지는거는 정규전의 정자도 모른다는거. 그럼 그놈은 진지 반납해야하는겁니다.
워터 1999년 누가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진중권의 글쓰기 스타일에 대해서 말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게릴라전을 길게 이어갈 생각이 없습니다. 진지를 구축하고 정규전을 할 생각입니다.' 100분토론 까지 나와서 게릴라전술 사용했죠? 진지 반납해야 됩니까.. 그냥 가지고 있어야 됩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세요.
워터 어느 지식인들이 그런식으로 논쟁을 해요.. 그런식으로 논쟁 않해요..
hggenius 에혀 형돌아 선한 이무기가 여의주를 차지 하려 했다면 왜 보천 도사가 하림한테 선한 이무기를 소개 했으며 영화에는 공개하지 않았다만 조선신에도 선한 이무기가 나와서 부라퀴를 마으려 했단다. 넌 뇌가 있는거냐? 여의주를 지키는 무사 하림에게 선한 이무기를 소개하는 보천도사 ㅋㅋㅋ 완전 코미디하냐? 지 무식이 뽀록나니까? 인신공격 하는것 까지도 진꼭지 닮았구나 냄새난다 이넘아
hggenius 형돌아 그리고 넌 우끼는게 맨위에 니가 뭣 때문에 종교 얘기 했는지도 기억못해? 내가 말하려는 바가 그거야 형돌아 ㅋㅋㅋ 이제 댓글이 마나 지니까 지가 무슨말 했는지도 모르는 멍청한 놈이 말은 무지 많아요. 에혀 형돌아 그냥 찌그러져 있어라. 너의 교주 진꼭지 한테 가서 자문해바 ㅋㅋㅋ
hggenius 형돌아 진짜 답답허다. 답답혀. 무식하면 그냥 찌그러져 있어 진꼭지 처럼 여기저기 씨부리고 다니지 말고
hggenius 참고로 디워 내용에 개해 얘기하려면 적어도 디워 프로필 정도는 읽고 와라. 그래서 선한 이무기와 부라퀴가 원래는 하나였고(드라카니안), 그리고 그 드라카니안이 버려진 아이를 키워 그 여자를 여의주로 만들었다. 물론 이무기라는 존재 자체가 여의주를 찾아 나서는 거지만 영화에서 나오는 착한 이무기는 여의주릐 힘을 쓴다는것이 여의주=소녀( 자신이 기른)의 죽음을 의미 하는 거기 때문에 착한 이무기는 서로 공존할 방법을 찾게 되고 그 와중에 부라퀴가 천상세게를 공격하게 된다. 쩝 거두 절미 하고 머리 나쁜 너가 이해하기 좋게 하기 위해서는 거기서 나오는 보천도사 있지? 그게 이무기 친구다. 알간? 이무기가 친구에게 여의주를 보호해달라고 부탁한다 알간?? 왜??? 그 당시 이무기는 힘을 잃은 상태기 때문에 알간? 이무기가 부라퀴아 동급이라느니 내용도 모르고 헛소리 짖거리는 형돌아 제발 부탁이니 프로필 이라도 읽고 짖거리렴
형돌 hggenius / 끝까지 선한 이무기가 여의주를 지키는 존재라는 말을 하는구나. 그래봤자 니가 영화 안봤다는 증명만 할뿐이란다. 영화도 안본 넘이랑 무슨 토론을 하겠냐. 그냥 찌그러져 있어라.
워터 / 워터야 넌 나한테 꼬리 내렸잖니... 왜 자꾸 기어나오니? 꼬리내려놓고 니가 하는 말이 '내가 언제 그랬는데" 이말 밖에 못하겠지. 댓글로 다 남아 있는데 뭔 발뺌이냐. 너두 그냥 찌그러져 있어라.
형돌 세류 / 세류야 내가 너보고 찌그러지라고 했을텐데... 영화도 안보고 넘이 왜 토론장에 끼어드니? 넌 자격미달이야. 가서 영화나 보고 토론장에 끼어들어라. 악한 이무기와 그 군단이 조선 부수기 위해 쳐들어 갔다는 넘이랑 내가 더 말해야 해? 왜 자꾸 영화도 안보고 설치냐. 내가 친절히 여의주 차지하기 위해 쳐들어 갔다고 설명까지 해줬잖니. 그럼 네~ 고맙습니다~ 하고 찌그러져야지 왜 자꾸 기나오니? 영화도 안본 넘이랑 토론하기 싫으니 걍 찌그러져라.
흠... 상대해보니 몇넘 안되네... doulos17 이넘만 찌그러 뜨리면 이제 끝나는거야? 이넘 대답할게 없으니 궁한쥐처럼 나타나지도 않네. 머 우리는 도망갈 구멍을 열어두지. 궁한쥐는 쫓지 않는단다. 흐흐~ 대빵없으니 쪼무라기들만 상대할라니 영 재미없구만. 여기 평정하고 난 떠날테니 쪼무라기들끼리 잘 놀아봐~
세류 형돌/ 너나 찌그러져야 할것같다. 영화에서 왜 선하고 악한 이무기로 구분되는지도 모르는 놈이, '그저 나는 이러이러한 선한 행동을 해야 그 녀석을 선한 이무기로 인정하겠어. 근데 쟤는 그런 행위를 안해. 그러므로 나는 인정 할 수 없어.' 인정하지 말라지? 영화를 본 관객의 대부분은 대립을 눈 앞에서 확실히 확인했으니까. 진중권이 인정하든 말든 니놈이 인정하든 말든 상관없다. 넌 그저 논리랍시고 말늘어놓고서는 인정못하니까 빠꾸. 이딴식이다. 그러니 반박도 재대로 못해놓고 다 이겼다고 생각하는데, 이겨먹고 싶다는 것에서부터 니놈의 태도에서부터 너는 사회구성원과 이야기를 주고받을 자격이 없다. 영화도 파악못하고 의견을 주고받을줄도 모르는 놈이랑 무슨 할말이 더 있을까? 가서 진중권한테 알랑방구나 뀌어라. 일반 시민만도 못한 쓰레기 녀석
형돌 세류 / ㅋㅋ 논리가 안되니 이젠 욕이냐? 그래 실컷 욕해라. 그런넘들 한트럭으로 와도 안무섭다. 진정 무서운건 논리가 있는 글 하나지.
워터 형돌 / 그는 악하다. (선하지 않다.) 나는 선하다.( 선하지 않지 않다.) <-- 이것이 바로 헤겔이 이야기한 노예의 삼단논법인데요. 정말 그것밖에 않떠올라요.. 글고 저한테는 논리 야그 꺼내지 마세용~~ 아셔쬬? ''?
하늘위로 형돌님/ 님이 하신 이야기는 다음으로 요약이 됩니다.(김휘영님의 글 중에서) :: 그래서 그(진중권)의 전략은 단 한가지 끝까지 ’우김’ 뿐이다. 자기가 생각하는 서사구조가 무엇인지도 말할 수 없고 또 왜 디워에 서사구조가 없는지도 증명해 내지 못한다. 그가 간간히 말하고 있는 건 서사구조가 아니라 그 서사 구조를 풀어가는 과정에서의 연출의 미비점에 불과하다. --김휘영
----논리적으로 '설명'을 하지 않고 자꾸 '선언'을 하면 그게 사실이 되고 만다는 건, 하나의 '戰術(전술)'이지 진실이 아니랍니다.
형돌 하늘위로 / 내 글에도 똑 같은 댓글 달았더구만 여기도 또 달았네. 여긴 지금 저 이야기 하는거 아니걸랑? 제발 전장은 제대로 찾아가자. 내가 직접적은 글에 댓글로 상대해줬으니 그길 참고하도록.
워터 / 꼬리 내린넘은 조용하라 했지. 말하다 안되면 말바꾸는 넘이랑은 더 할말 없으니 넌 혼자 벽보고 놀아라. 댓글로 다 달려 있는데 "내가 언제 그랬는데" 이런 말 바꾸기가 통하냐? 넌 찌그러져.
noro0314 하늘위로/ 진중권이 말한 서사는 보편적인 의미의 서사입니다. 굳이 설명이 필요한게 아닙니다. 서사란 개연성과 인과성에 의한 사건 진행과정의 시간적인 흐름정도 입니다. 진중권이 말한 서사는 사전적인 의미에서의 즉, 보편적인 의미의 서사입니다. 굳이 말하거나 증명해야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토론에서도 그런 의미로 말했구요. 사건의 다음에 사건이 발생하는 것과 사건의 결과로 사건이 발생하는 것은 다르다란 진중권의 말이 바로 개연성과 인과관계, 시간의 흐름등을 이야기 한겁니다. 김휘영이 무식해서 서사의 사전적의미를 몰라던지, 아니면, 악의적으로 진중권의 말을 왜곡하려했는진 모르지만, 위의 김휘영이 말한건 터무니 없는 헛소리일 뿐입니다. 어려운 말을 이리저리 꼬아 놓는다고 논리적결함이 보충되는건 아니지요.
noro0314 워터// 제가 진중권을 좋게 평가하는건 그가 쉬운말로 얘기 한다는 겁니다. 사실 제대로 된 책 읽으면 머리 아프고 잠오죠. 전 인문학 전공자도 아니고, 그쪽으로는 제대로 배운적도 없습니다. 진중권, 도올, 강준만의 강점이 바로 쉽게 얘기할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중권이 게릴라전을 하건 빨치산짓을 하건 전 관심 없습니다.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면 되는 거지요. 다만, 어느 정도의 선을 넘지 않으면 됩니다. 도올은 과대망상이 아닐까 하는 정도의 행동과 너무나 자기중심적인 사고, 노태우와 노무현에 대한 아부와 그후 안티로 돌아섰던 전력등이 그를 용납하기 힘들게 만들었었죠. 하지만, 진중권이나 강준만은 제가 아는한 그정도 선은 넘지 않았습니다. 그둘이 한참 싸울때도, 저사람들도 참...하는 정도였지 저런 행동은 용납못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noro0314 그에 비해 김휘영은 도저히 참을수 없을 정도의 악행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가 하는 짓이란, 스토리가 부실하다는 약점을 가진 디워란 영화를 스토리의 완성도가 높다는 말도 안되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디빠들에게 아부하고 환심을 사서 진중권과 그가 한 말을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비방하는 악질적인 것입니다. 즉, 집단주의에 기대어 자신의 이익을 챙겼던 나치의 선전대원들과 같은 겁니다. 진보누리란 곳에서 활동한다는데, 집단주의와 붙어먹는 진보주의자도 있습니까? 전 김휘영의 글은 이 블로그에서 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다른곳에서는 좋은글 쓰고 있을지 몰라도 이곳에서의 글은 참으로 악랄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늘위로 noro0314 / 여기 사람들의 지적대로 님은 진중권이지요? 진중권이 쉬운 말로 한다는 건 '사실'입니까? 님의 일방적인 '선언'입니까? 진중권이 쉬운말로 설명한다는 말은 대한민국에서 님 혼자 뿐이라는 건 아시죠?
하늘위로 noro0314 / 김휘영으로 검색해 본 결과로, 미디어 다음 아고라 게시판, 파란닷콤, 야후 게시판, 네이버 블로고 등에만 해도 김휘영 문화평론가가 쓰신 수천 개의 글이 있음.

최근 고등학생 논술 사이트에도 상당수가 게재되어 있음.
하늘위로 noro0314 /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어떻고? 또 자기가 잘 알지도 못한 문자 쓰려다 챙피당한 규모의 경제란 말도 그렇고 또 조셉 켐벨의 #%^&#--#$%%(민중은 시작을 한다--이상한 기호부분은 희한한 꼬부랑 글)는 글을 사용하는 것도 그렇고 ....... 진중권이 글을 쉽게 쓰지 못하는 건 진중권이 그걸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그런데 진중권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왜 이렇게 거짓말을 잘 하지요?

참고로 진중권과 김휘영의 글을 간단하게 비교평가한 네티즌의 평입니다.
저런 글(김휘영 문화평론가의 글)은 스크랩 해뒀다가 두고두고 읽어야지 구국결단 06/04/06 [10:19]

참 대단하십니다.
무슨 말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남이 뱉어놓은(그것도 외국사람들) 말귀절이나 알아먹을 수 없게 번역하는 일을 지적 작업으로 착각하고 있는 지식인들 많지요

글이라는게 자신의 지식을 시위함에 목적이 있는게 아니라, 공유하고 전달함에 그 목적이 있다면, 남이 이해할 수 없게 글을 쓰는 것은 크나큰 수치라고 생각합니다.

하늘위로 (위에서 계속) 무위씨의 글은 읽는 사람이 열의만 있다면 읽고 이해할 수 있게 글을 쓴다는 점에서 글쟁이의 기본이 탄탄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늘위로 제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noro0314님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여기에 가서 직접 확인해 보시지요? 주장과 존쟁을 하면서 왜 거짓말 까지 동원해야 하는지 참 어이가 없군요.

출처 댓글:
http://jabo.co.kr/sub_read.html?uid=14941§ion=section3§ion2=참고로 구국결단이란 분은 진보누리에도 자주 들러 고정아이디로 글을 올리던 분이더군요.
하늘위로 대한민국의 학문과 평론계의 발전을 위해서 진모씨는 좀 자중하고 7-8년 정도 이상 공부하고 나타났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수준으로 어떻게 대중 앞에 나서서 말도 안되는 말을 한다는 말인가요? 진중권이 무슨 일개 네티즌입니까? 대한민국 지식인의 수치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하늘위로 noro0314 / 이 보세요. 진중권의 첫번째 잘못은 그가 매우 매우 무식하면서 대중을 코치하려고 하는 점입니다. 대중 한테 코치를 받아야 할 사람이 주제넘게 말입니다. 둘째 진중권의 학문이나 진실에 대한 자세가 글러 먹었다는 겁니다. 이하 더 많지만 그건 진모씨 자신이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지식인이 그렇게 살면 안되지요. 그건.....
noro0314 하늘위로/ 진중권정도 글이면 쉬운거 맞아요. 제대로 격식갖춘책은 머리 아프고 지겨워요. 글고 구국인가 뭔가 하는 사람은 그냥 네티즌인데 그사람 의견을 내가 왜 받아들여야 하죠. 그사람에게 찬성하는 당신이나 받아들이고, 나한텐 제대로 된 이론이나 논리로 답변해줬음 하네요. 디빠들 글 넘쳐난다고 그게 진실이 됩니까? 진중권이 규모의 경제를 잘 몰랐다는데, 그토론은 제대로 못봐서 어떻게 된건지는 잘 모르겠고요, 100분 토론에서는 디워의 규모가 한국시장에서는 너무 크다는 말을 한건 기억납니다. 아마도 그런얘기 나오다 말실수 했겠지요. 말은 누구나 실수할수 있습니다. 단, 글은 안되요. 인테넷에 댓글 다는게 아닌한 실수하면 비판 받습니다. 김휘영이는 아예 서사의 사전적의미도 모르고 있으면서 진중권의 논리를 깨는것도 아니고 고작 말실수한거나 물고 늘어지는 찌질한 놈이에요.
noro0314 자기는 아예 터무니 없는 이론을 블로그에다 늘어 놓으면서 누굴 탓할수 있다는 거요?
형돌 다들 캐버로우탄겨? 하긴 논리가 딸리는데 뭘 어쩌것냐. 똘마니들은 다 평정했고... 대빵은 안보이니... 난 100명 남짓한 사람들 떡실신 시켰으니... 이제 떠나도록 하마. 똘마니들끼리 반상회 잘하고 있어~ 대빵 나타나면 날 부르도록해~ 언제든 상대해줄테니~ 논리가 없는 100명쯤이야 머 식은죽 먹기지머. ㅋㅋ
워터 하이고~ 드디어 득도하시고 하산을... 그 도를 부디 널리 펼치시어 세상을 이롭게 하시길..
윙플라워 noro0314 (복사돌이 진꼭지?)의 무식함을 밝힌 글임 ☞ http://cafe.naver.com/moowee/95말투부터 철저한 진꼭지 복사돌이로 의심받기 딱이네. 무식한 것은 두번째 의심 근거고. 삭제

 

by 알랭드보통 | 2007/09/18 07:21 | 트랙백 | 덧글(0)

조셉 켐벨의 신화론과 진중권의 '지적 사기' 김휘영 '

조셉 켐벨의 신화론과 진중권의 '지적 사기'|○김휘영의 문화평론
전체공개1/2007.08.15 13:25

조셉 켐벨의 신화론과 진중권의 '지적 사기' 김휘영 (문화평론가)

[주장] 우리 사회는 좌파 지식인들의 분발을 더욱 요구해야 한다

셜록 홈즈와 괴도 루팡을 통해 본 집단 무의식

유럽 바이어들을 만나서 그들이 프랑스인들에 대해서 평하는 말을 들은 적이 많다. 프랑스 사람들은 전부 거짓말쟁이라는 말이었는데 이건 전통적으로 프랑스와 앙숙이라는 영국 사람들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심지어 오스트리아에서 온 어떤 여자 바이어는 "어머 쟤는 프랑스 사람도 아니면서 왜 거짓말을 하지?" 하는 말까지 서슴없이 했다. 물론 단순한 편견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아니 난 오히려 거짓말도 종종 하는 프랑스 사람들의 그런 자유분방함을 나름대로 존중한다. 내가 써 놓은 글 중에 아서 코난 도일이 쓴 셜록 홈즈와 모리스 르블랑이 지은 괴도 루팡에 관한 간단한 소고(小考)가 있다.

이 두개의 흥미 진진한 추리소설에는 단순히 재미로 보기에는 중요한 문화 코드가 숨어 있다. 내가 발견한 그 코드는 두 소설 속에 깃든 영국과 프랑스라는 집단이 공유하는 무의식이랄까 또는 민족적 기질에 관한 것이다.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범죄자를 끝까지 추적하여 잡는 사립형사가 히어로인 셜록 홈즈는 질서와 규율을 존중하는 수호자며 이는 보수적인 영국인의 집단 무의식이 투영된 결과다. 이에 반하여 기존의 틀에 박힌 질서를 숨막혀 하며 개인의 자유로움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프랑스 사람들의 집단 무의식은 기존 질서의 수호자인 치안 경감을 비웃는다. 오히려 물샐틈 없는 방어망을 뚫고 신출귀몰하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고 심지어 조롱까지 하면서 유유히 빠져 나가는 - 그러나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도둑- 루팡을 발현해 낸다.


내가 보기엔 영국에서 괴도 루팡이 대중적 인기를 얻는 소설로 태어나기 어려운 만큼이나 프랑스에서 셜록 홈즈가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기에는 너무 따분한 캐릭터다. 이런 차이가 한쪽은 탐정을 영웅으로 만드는 서사구조를 만들어 내었고 또 다른 쪽은 영리한 도둑을 영웅시하는 서사구조를 만들어 냈다.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보수적인 유럽인들에게 이런 특이한 기질을 가진 프랑스 사람들이 농담반 시샘반으로 변덕쟁이 또는 거짓말쟁이로 치부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학문적 엄밀성을 요구하는 분야에서 까지 이런 거짓말이 범람한다면 사정이 많이 다르지 않을까? 다음은 프랑스 지성계를 발칵 뒤집으며 프랑스의 무식한 거장들을 비꼬았던 지적 사기(이희재 譯)라는 책의 전말이다.

엘런 소칼의 지적 사기 논쟁

과학의 기본개념조차 모르면서 자신들의 빈약한 이론을 난해하고 위압적인 과학용어로 포장해 독자들의 기를 죽이고 명성을 얻은 학자들의 지적 사기극을 파헤친 흥미있는 보고서가 있다. 이른바 '소칼의 장난 Sokal's Hoax'으로 불리는 일련의 논쟁적 사건은 소칼이 패러디와 넌센스로 가득찬 한 논문을 ≪소셜 텍스트 Social Text≫라는 포스트모던 저널에 기고함으로서 촉발되었다. 의도적인 거짓말을 여러 과학 용어로 잘 포장한 이 논문은 결국 게재에 성공하였으며, 후에 학문적 엄밀성'을 시험해 보기 위한 시도한 것이라고 폭로함으로써 그 정점에 달했다. 이어 소칼은 루벵 대학 물리학과 교수 브리크몽과 협력하여 <<지적 사기>>를 프랑스에서 출판하였고, 여기서 프랑스 철학자들이 과학을 남용한 사례를 철저히 분석, 비판하면서 현대 프랑스 철학에 대해 전면적 선전포고를 하기에 이른다.

소칼과 브리크몽이라는 전문 과학자의 눈에 비친 그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일군의 프랑스 철학자들의 사상은 한마디로 엉터리다. 라캉, 보드리야르, 크리스테바, 들뢰즈 같은 이름난 지식인이 납득할 만한 설명도 없이 원래의 맥락에서 완전히 벗어난 과학적 개념을 써먹거나 이 개념을 끌어들이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성찰은 고사하고 개념의 정확한 뜻조차 밝히지 않은 채 전문 과학 용어를 마구 남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판은 라캉으로부터 시작된다. 수학, 특히 위상학과 정신분석학을 연결시키려는 라캉의 시도는 하찮은 지식을 과시하고 의미가 결여된 문장을 조작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이상 파란글은 서평인용)

이를 매우 알기 쉽게 구체적인 예로 써 놓은 hanjander님의 블로그 (http://cafe.naver.com/hanjander/231 )에 있는 글도 읽어보자.

의도적 사기였는지, 자기기만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 아니면 이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인지는 모르나 허수의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한 "자크 라캉"은 <정신분석학적 위상학>을 쓴 후 자신이 위상수학의 가장 최신이론을 응용했다고 으시대고, 상대주의와 상대성조차 구분하지 못한 "라투르"는 자기가 아인슈타인한테 한수 가르쳐 주었다고 기염을 토한다.

크리스테바는 "무한집합"을 이야기하고 보드리 야르는 "비유클리드 공간"과 "복수의 굴절률을 가진 초공간"이라는 수학에도 물리학 에도 없는 발명품을 들고 나온다. 이에 참지 못한 뉴욕대학의 물리학 교수인 앨런 소칼은 이들의 사기에 대해 역사기를 치는데 이들 학자들의 이론을 패러디하고 유클리드의 파이나 뉴턴의 중력을 적당히 부정하며 억지와 후안무치한 궤변으로 가득한 엉터리 논문을 써서 그들의 저명한 문화 연구지인 "소셜 텍스트"에 보내 대서 특필하는데 성공한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과 과학자들 간에 벌어진 사기사건의 전말이다. 사기란 옳지 않고 저급한 수단이나 앨런 소칼의 장난기 넘친 사기는 일면 귀엽기까지 하다. (인용끝) (이하 생략, 이 사기극의 내용이 궁금하면 여기로 클릭)

권위에 오만하고 진리에 겸손하라!

사실 이 책의 내용이 새삼스레 필자의 주목을 받은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대학 시절 "권위에 오만하고 진리에 겸손하라!"라는 좌우명을 스스로 만들고 온갖 고전과 세계 사상 서적을 섭렵하던 시절 나는 세가지 거의 확신에 찬 가설을 세웠다. 말이 가설이지 셋 다 거의 확신에 가까울 정도의 자신감이 깃든 나의 판단이었다. 그 첫째가 인간의 본성을 무시한 공산주의는 그 이론 자체가 가진 구조적인 모순(矛循)에 의해서 스스로 붕괴될 거라는 것이고 둘째가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은 그가 자신의 억지 논리를 맞추기 위해서 상당부분 임상 실험을 조작했으리라는 결론을 자체적으로 내린 일이었다. 또한 그 마지막이 필자가 대학 졸업할 즈음에 번성하기 시작한 포스트 모더니즘은 예술이나 문예 사조라기 보다는 화려한 말장난이나 지적 사기가 그 주류라는 것이었다. 필자가 경제학이라는 전공이외에도 독학으로 영문학도 전공자격을 취득하였기에 지적 사기에 나오는 프랑스의 유명학자들의 면면은 나름대로 친근하기도 하다.

공산주의의 몰락에 관해서는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이 되었고 프로이트의 임상실험 조작에 관한 이야기는 필자가 군대에 있을 때 한국 일보를 통해서 그의 손녀가 이런 사실을 폭로한 기사를 접하게 되어서 몹시 반가웠다. 마지막 부분은 대학을 졸업하고 친구와 많이도 다툰 분야였는데 엘런 소칼이 쓴 <<지적 사기>>는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해서 내렸던 나의 판단이 맞았음을 상당 부분 보증해 준 셈이다.

내가 이 세가지 가설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그 책의 작가가 아무리 권위있는 학자라 할 지라도 그가 쓴 글이나 주장은 철저하게 방법적 회의를 하면서 대했기 때문이다. "권위에 오만하고 진리에 겸손하라!"라는 그 당시 나의 좌우명처럼 나에게 있어 권위란 극복하고 뛰어 넘어야 할 대상이었지 경탄이나 숭배의 대상이 아니었다. 겸손한 마음으로 유일하게 대해야 할 것은 진리 그 자체 뿐이었다

한국 지식인들의 지적 사기는 어느 정도까지

나는 최근 한국에서 진보를 참칭하는 몇몇 지식인들 중에서 앨런 소칼이 지적한 이런 류의 지적 사기를 벌이고 있는 현상을 목도한다. 그 중에서도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는 이런 지적 사기가 정도를 넘어 서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의 글에 본문의 내용과 별 연관도 없는 온갖 유명 인사를 장식용으로 등장시키고 있는 수법이 너무나 비슷하다. 이건 애런 소칼의 책 <<지적 사기>>에서 폭로된 가장 기본적인 일치점에 불과하다. 더 황당한 것은 진중권이 인용해 오는 저명한 학자들의 주장이 본문에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전혀 상관없거나 심지어 조셉 캠벨이나 마르크스의 경우처럼 자신이 주장하는 말과 완전히 반대의 경우도 있음을 확인하게 될 때 실로 어안이 벙벙하다. 이건 독자를 무시하는 진중권 류의 뻔뻔함에서도 기인하겠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진중권의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무식함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해석할 도리 밖에 없다. 무식하지 않다면야 저명한 학자의 말을 인용해서 자기 글을 치장을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자기 주장과 일치점이 있는 것을 선택할 정도의 기본적인 지적 능력은 있다.

위에 열거된 사람들이야 인문학자들로서 자신이 잘 모를 수도 있고 잘 몰라도 되는 물리학이나 수학이나 자연과학적 개념을 이용해 먹으려다 그런 일이려니 하고 양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미학을 전공했다는 진중권은 미학(美學)이 가진 속성상 신화와 신화학 그리고 종교학이나 문화 인류학의 인문학적인 교양의 기본기가 없고서는 그 본질에 접근하기 힘든다. 그렇지 못하면서 예술이나 작품 세계를 논하는 것은 논리나 평론이 아니라 유치한 말장난으로 치졸하기 그지없는 또 다른 작품 하나를 시중에 던져 놓는 행위가 될 공산이 크다. 또 그가 진보를 주창할려면 마르크스나 게오르규 루카치 정도는 기본적으로 알아야만 하는 입장이다.

무식함과 뻔뻔함은 지적 오만이 아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약간의 뻔뻔함이라든가 지적 오만을 가지는 것은 독(毒)보다는 일종의 약일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대로 된 독자라면 진중권이 쓴 몇몇 글에서 일종의 천박함을 느끼는 경우라면 '그의 좃은 서지 않는다.' '좆잡고(파지음경)-' '닭짓' 하는 식의 온갖 저질스런 용어를 글이랍시고 내뱉는 이상한 용기에 있지 않을 것이다. 또한 TV 대담에 나와 자신의 논지를 위해서 다른 사람을 보고 '정신병원에 가야 할 사람'이라고 내뱉는 독설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좋게 보면 금기시된 용어를 쓰서 주위를 환기시키는 기법 정도로 애교로 봐 줄만 하다. 그 이상한 용기의 이면에 숨어있는 다음의 형태에서 진실로 천박함을 느끼게 된다. 일반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하기도 어려운 '앙겔루스 노부스' 같은 말을 책 제목으로 다는 이중적인 태도는 약과다.

'비트겐슈타인은 내 인식의 기초이고, 벤야민은 영감의 원천이다'라는 진중권의 뜬금 없는 글처럼 이름을 빼고 나면 아무 알맹이도 없는 말의 난장이다. 유명한 사람의 권위를 빌려서 자신의 글을 포장하는 식은 저급하다는 평가를 받아 마땅하며 논지와 별 상관도 없이 억지로 등장시키는 발터 벤야민, 들뢰즈,노엄 촘스키, 조셉 켐벨, 비트겐 슈타인, 알세튀르 같은 이름에서 지적인 천박함을 발견하지 않을 사람은 지식인이 아닐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학문적 성취도나 사상(思想)하는 힘이 취약하기에 도저히 극복할 수 없었을 것 같은 서구 유럽에 대한 끝없는 열등감과 지적인 천박함을 그의 글에서 읽어 내기는 특별히 어렵지 않다.

한국 지식인들의 서구문화에 대한 열등감과 지적인 천박함

좌파나 우파를 막론하고 한국 지성계에 이렇게 서구문화에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된 사대주의 습성은 매우 만연하다. 특히 인문학의 경우에는 그중에서 프랑스에 대한 열등감이 상당하다. 많은 지식인들이 쓰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나 프랑스의 '똘레랑스'라는 용어가 우리 사회에 범람시켰다. 결론부터 말하면 필자는 이런 용어를 좋아하지 않고 또 그 용어를 만들어 낸 서구문화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나 우월적인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이런 용어가 세간에 마구 번져가는 현상의 기저에는 한국인들의 서구문화에 대한 열등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열등감을 이용해서 우월감을 총족 시켜 보려는 천박한 지식인들의 이해관계와 이런 상황을 이용해서 자신의 가치를 올려 보려는 심리가 묘하게 맞아 떨어지고 있는 현장이다.

일례로 한국의 많은 교수나 칼럼니스트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말할 때 서구 부유층의 기부문화와 함께 빠뜨리지 않는 예가 하나 있다. 미국의 빌 게이츠나 조지 소르스 등이 상속세 폐지에 반대하는 운동에 앞장 섰다는 사실이다. 한데 필자는 이 사실이 우리가 멋모르고 칭송해 마지않는 노블레스 오브리주가 말하는 '가진 자의 겸양과 미덕'의 정신에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죽는 순간 아무리 많은 재산도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 당연히 상속세란 자신의 재산에 변동을 주는 문제가 아니라서 이는 자기 자식의 재산을 놓고 생색을 내는 행위에 불과하다. 상속세 폐지 반대 운동에 앞장 서는 이런 고매한(?) 사람들이 법인세나 금융 소득세 인상 같은 자신의 재산이 직접 걸린 문제에는 반발이 매우 심하다는 사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빌 게이츠는 언제나 미국의 독과점 규제법을 피해 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고 국제 환투기꾼 조지 소르스는 세금 포탈죄로 프랑스 법정에 오른 사실에 의아해 할 것이다. 조지 소로스는 한국에서도 서울은행을 매입하고 매각하는 짧은 기간에 무려 수백억원의 차익을 남기고 세금 한 푼 안내고 도망갔다. 또 프랑스는 과거 그들이 식민지로 두었던 아랍계 이민 2세들에 대한 차별문제 때문에 장기간의 폭등이 세계에 알려지자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똘레랑스의 허실이 드러나고 있다. 현실적인 이익이 걸린 법인세나 금융 소득세에는 극렬히 반대하는 이들이 자기가 죽고난 후에 자식의 이익이 박탈당하는 상속세 존속에는 찬성하는 이유는 그 연원이 다르다. 그들이 일부러라도 자수성가했다는 것을 내세워야 그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문화적 토양과 떼놓고 생각하기 힘들다.

이규태를 인종차별주의자로 몰고 간 진중권의 저돌성(猪突性)

9.11 테러에 관한 사회적 이슈가 한참이었을 때 나온 진중권의 초창기 글 중 그가 예로 든 카오스 이론을 보고 정말 저 사람이 카오스 이론은 제대로 알고 썼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정도였다. 이건 엘런 소칼이 프랑스 지성계에 만연한 지적 사기 풍토에 의문을 품은 것과 같은 동기였고 공교롭게도 앨런 소칼이 쓴 <<지적 사기>>라는 책에도 '7. 간주곡-카오스 이론과 포스턴모던 과학' 이란 소제목을 단 글이 나온다. 진중권의 그 글을 처음 접했을 땐 "참 재미있는 사람도 다 있구나" 라고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조선일보 칼럼니스트 이규태가 말한 아랍의 소위 인샬라 문화를 논하는 글에서 '살람 말레꿈' 이란 아랍의 인사말을 인용하면서, 일생을 비교문화 연구에 바친 故이규태씨를 말 한마디를 꼬투리 삼아 인종차별주의자로 몰고가는 광경에서는 영락없이 씩씩거리는 멧돼지가 돌진하는 모습을 연상한 사람은 단지 필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필자는 중동 바이어와 오랫동안 무역을 해온 관계로 인도 아라비안 문화를 상당히 접해 왔다. 게다가 필자가 대학 시절에 문화 인류학에 심취했었기 때문에 우리와 상이한 문화를 해석할 수 있는 역량이 나름대로 갖추어진 상태였다. 이슬람 사원인 모스코에도 수차례 가 보았고 심지어 중동 사람들과 식사를 할 땐 수저나 포커 대신에 손가락을 쓸 정도다. 이런 필자가 보기에도 중동의 종교와 기후와 문화에 기반하여 종합적인 논지를 전개하였기 때문에 특별히 큰 문제점이 없었던 문화평론이었다.

다만 故이규태님이 연재한 비교문화 코너는 긴 논문이나 책이 아니라 매우 짧은 글로 마무리 해야만 하는 관계로 약간의 논리적 비약은 구조적으로 내포된 문제였다. 그런데 그 글에 나온 작은 옥의 티를 의도적으로 침소봉대해서 인종차별주의자 운운한 진중권의 특이함은 단순 무식한 멧돼지가 가진 저돌성(猪突性)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다. 이 저돌성의 기본적인 속성이 전후 좌우를 종합적으로 볼 수 없는 좁은 시야 즉 편협함과 무식함이다. 그때 진중권이 보여준 것은 평생을 비교문화학을 연구하며 쌓아온 故이규태님의 투철한 장인(匠人)정신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기도 했다.

마르크스가 울고 간 진중권의 영어공용화 반대논리

그러던 중 진중권이 제법 유명한 잡지 말지에 기고한 영어공용화를 반대하는 이유로 든 '맑스주의 반자락' 이야기에서는 정말 기절초풍할 뻔 했다. 진중권이 맑시즘에 대한 기초적인 사실만 알아도 그가 주장하는 영어 공용화 반대 논리에서만은 맑시즘을 끌어 들여서는 안되는 일이 자명했다. 그가 그 글에서 언어에 대한 유물론적 도구론을 공박하면서 내놓은 민족 감정이나 상징은 철저하게 관념론적 논리에 근거하고 있음으로 해서 유물 변증법적인 토대에 있는 맑시즘이 들어오면 이율배반이 일어난다. 진정으로 맑시즘에 기반한다면 하부구조인 경제구조에 촛점을 두고 관념적인 민족정기나 민족 의식을 양보하는 대신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이익을 위해서 영어 공용화에 앞장을 서야 앞뒤가 맞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에는 '영어가 계급'이라는 말은 공공연하다. 직장에서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못하는 사람들에 비해서 약 140%에 달하는 임금격차를 향유하고 있다. 물론 임금이 높은 것과 비례하여 승진이나 근무환경도 다르다. 개인의 노력 유무도 있겠지만 영어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그의 부모가 얼마만큼의 영어 환경을 만들어 주었느냐 하는 원인에 달려 있기에 이건 이제 계급의 문제로 인식해야 정당하다. 영어 공용화가 되어야만 부모의 경제력 때문에 영어를 배울 기회를 상대적으로 박탈당하고 있는 무산자 계급이 조금이라도 더 동등한 기회를 부여 받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진중권이 쓴 그 글의 원문에 나온 칸트나 훗설 비트겐슈타인 등의 유명인사는 전혀 엉뚱한 쳇바퀴 위에 올려져 헛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가 말하듯이 극단주의가 문제라고 말하려면 더욱 더 '맑시즘의 반자락'을 거들먹거려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맑시즘이야 말로 노동 토지 자본 경영 정보 같은 다양한 생산요소 중에서 유독 노동시간에만 집착한 노동가치설을 펼친 극단적인 논법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은가? 또한 인류 역사를 오로지 하부구조인 경제 구조 즉 생산수단의 소유관계에 따라 구별하는 논법 또한 극단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좌파 지식인(?) 진중권의 뇌 구조가 어떻게 짜여져 있기에 영어 공용화를 반대하는 글을 써면서 유물론에 기반한 언어 도구주의를 비난하고 칸트식의 관념주의를 싣컷 칭송한 후에 자기가 무엇을 주장했는지 글을 끝맺기도 전에 철저하게 유물 변증법의 세례를 받은 맑시즘 이론에 기반하여 영어 공용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공박했다는 글을 썼다는 말을 자랑삼아 늘어 놓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민족은 브로조아의 지배 이데올르그라서 프롤레타리아의 적이며 전세계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위하여 민족을 버려야 한다고 주창한 마르크스와 엘겔스의 사상을 진중권이 알 턱이 없다. 정작 진중권에게 중요한 것은 그 내용에 상관없이 마르크스가 대중에게 획득하고 있는 권위일 뿐이다. 진정으로 맑시즘의 반자락을 말하려면 민족이라는 지배 이데올르그에 의해서 자신의 계급적 처지도 망각한 채 휘둘리면서 한국어 최고를 외치고 있는 민중들을 계몽할 때나 쓰야 한다.

필자는 왜 개그 콘스트 연출가들이 진중권을 개그맨으로 출연시키지 않고 있는지 궁금하다. 한국 개그계의 발전을 위해서 진중권 스스로 개그계로 진출해 볼 것을 적극 추천한다. 그의 감각적인 재능이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계통이 그곳인데 학문적 엄밀성을 요구하는 영역에 미련을 두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목표를 잘못 잡고 있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진중권의 지적 사기에 이용당한 조셉 켐벨의 권위

진중권은 박정희의 공과를 평하자는 것이 야바위 판이라면서 죠셉 켐벨의 책을 예로 들며 "Das Volk dichtet"(민중은 詩作을 한다)는 말로 시작한다. 그런데 여기에 조셉 켐벨이 인용되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진중권이 말하고자 하는 논리구조와 전혀 안맞다.

죠셉 켐벨의 '신화의 힘'을 제대로 읽어 본 사람이면 이 논증이 얼마나 배꼽이 뒤집힐 정도로 황당한 경우인지 안다. 진중권은 죠셉 켐벨이 말한 "민중은 시작(詩作)을 한다' 명제를 끌어다가 박정희 신화의 허구성과 비주체성을 설명하는 서두를 장식했다. 그런데 이 명제는 박정희가 위대했다고 믿는 민중들의 믿음에는 전혀 과학적인 이유가 없다 라고 주장할 때 쓰야 하는 명제가 절대 아니다. 정반대로 민중들의 자발적인 박정희 향수와 희구에는 절대로 무시하지 못할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라는 결론을 도출하는 글의 서두에 활용해야만 올바른 예시가 된다. 만일 조셉 켐벨이 평생을 들여 연구한 성과를 한국의 진중권이 자신이 주장하는 내용과는 정반대의 결론을 말하기 위해서 자기가 말한 부분이 교묘한 트릭에 의해서 도둑질당했다는 사실을 알면 어떤 기분일까? 내가 죠셉 켐벨이라면 진중권을 정신병원에 보내려고 하기보다 뺨을 한대 갈겼을 것이다.

진중권이 끌고 들어 온 신화학자 조셉 켐벨은 진중권의 글에서 저렇게 이상하게 이용되어서는 안되는 사람이다. 이는 조셉 켐벨의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다음을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신화학을 전공으로 삼아 평생을 구술문화의 총아인 신화와 전설이나 민족 설화를 연구한 학자들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일까를 단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너무나 쉽게 깨닫는다. 신화학이란 우리가 터무니 없는 이야기나 미신(迷信)이라고 쉽게 단정지어 버리는 신화와 전설 또는 민간 설화를 연구해 보면 장소와 민족에 관계없이 어떤 공통적인 코드나 구조가 있음을 기본적인 전제로 하여 출발한다.

또한 신화 속에 깔려 있는 그 코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과학적이며 정교한 구조를 띄고 있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밝히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것이 조셈 켐벨이 그의 명저 <<신화의 힘(The Power of Myth>>에서 그리스 신화, 아메리칸 인디언 신화, 인도신화, 불교사상, 중국의 노장 사상은 물론 20세기 영화 <스타워즈>까지 풍부하게 활용하면서 신화의 본질과 그 속에 녹아 있는 '큰 지혜'를 들추어 내는데 주력한 본질적인 이유다.

이런 사람들의 평생에 걸친 노력과 학문적 성과로 인해 신화와 전설이나 민담을 두고 고려할 가치가 없고 비과학적인 미신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거의 사라졌다. 진중근을 빼 놓고서 굳이 이런 '무식한 생각'을 가진 사람을 찾으라면 과학이나 학문이 아닌 종교적 신앙에 심취한 나머지 지성 세계에서 뒤떨어진 사람들 정도 뿐이다. 즉 서구 기독교 같은 유일신에 과도하게 집착하여 이성을 잃고 있는 극소수의 근본주의자들 같은 경우에는 세계 각국의 전설이나 샤머니즘을 미신이라 치부하며 백안시하는 무지몽매함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경우도 간혹 있다. 하지만 진중권이 잘못 인용한 조셉 켐벨의 경우는 '서구인들의 보수종교의 편협성에 실망한 나머지 오늘날을 비신화한 세계로 규정하고 신화가 우리를 영적인,범인류애적인 의식의 수준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보배로운 가치가 있다'고 설파한 사람이다.

조셉 켐밸이 21세기 문명사회에 던지는 화두

조셉 켐벨이 스타워즈를 보고 말했다는 내용도 너무나 의미 심장하다. 그는 테크놀로지로는 인류를 구원할 수 없다고 말하는 데 이 말은 진중권이 신화는 잘못된 믿음이라는 말과 구술문화 활자문화 논법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와 정반대 방향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솔직히 대학물을 먹은 사람치고 신화를 끌어다가 이런 논법으로 신화학의 주장을 인용하는 사람은 진중권을 빼고는 접해 보지 못했다.

신화학이 한참 발전할 시기에는 문화인류학도 번성했다. 서구 지성계에 구조주의 열풍을 몰고 온 레비 스트로스의 저서 <<슬픈 열대>> 나 프레이저의 <<황금가지>>같은 책에 나오는 정령 신앙도 이런 연장선 상에 있다. 고도로 문명화된 서구사회의 편견으로 쉽사리 무시하고 야만적이거나 미개하다고 치부하는 파퓨아 뉴기니 같은 원시 사회도 서구 문명 사회가 생각하는 것처럼 미개한 사회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들이 아프리카 등의 오지에 들어가서 연구해서 쌓아올린 학문적 성과는 아무리 문명화된 도시에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원시의 모습을 간직한 이들 부족과는 본질적으로 갖은 구조를 갖고 있음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더 나아가 우리가 미개한 사회로 치부하고 있던 이들이야 말로 우리 인간이 가진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등불을 밝혀주는 귀중한 보고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며 또 그들이 평생에 걸쳐서 이루어낸 학문적인 성취이다.

그러므로 진중권이 신화학이나 문화인류학에 대한 아주 기초적인 지식이라도 갖고 있고 그것을 제대로 적용할 줄 아는 능력이 있다면 박정희의 공과 논란에 신화 속의 영웅신화를 끌고 들어가는 무모한 객기를 부리지 못했을 것이다. 박정희 신화의 허구성을 말하면서 신화를 말하는 논증 방식을 취하는 것은 박정희 신화가 엉터리임을 밝히는 데 기여할 수 없는 태생적인 운명을 갖고 있다. 오히려 신화학의 원래 목적처럼 박정희 신화는 근거가 충분한 민중들의 집단 무의식이라는 사실만 더욱 확인해 줄 뿐이다.

물론 진중권의 지적처럼 신화라는 뜻에는 잘못된 믿음이라는 의미가 분명히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뜻을 거기다가 갖다 쓰는 것은 숲을 보고서도 일부러 못 본 척하고 그 숲 속에 웅크리고 있는 작은 나무 한 그루만 보았고 또 보아야 한다고 딴청을 떨고 있는 짓이다. 왜냐하면 진중권이 말한 '잘못된 믿음'이라는 뜻은 신화가 가진 많고 많은 함의(含意)라는 숲 속에서 끼껏해야 나무 가지 하나의 의미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조차도 진중권의 주장처럼 제대로 된 철학을 하는 사람들이 만든 주장이 아니라 신화에 대해서 뭘 모르는 사람들이 피상적으로 쓰고 있는 개념에 불과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진중권이 인용한 조셉 켐벨이 그의 일생에 걸쳐 신화를 연구하고 강의한 목적이야말로 바로 '진중권처럼 무지한 사람들이 가진 그 생각이 잘못됐다'는 점을 밝히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죠셉 켐벨은 민중이 집단적으로 시작(詩作)을 해낸 영웅신화라는 것이 썩은 쌔끼줄처럼 허약하기 짝이 없는 논리구조를 가진 것이 아니라 토대와 근거가 너무나 단단한 동아줄 같이 강력한 견인력이 있다는 주장을 하기 위하여 신화를 말하고 있다. 그의 저서에 다른 것도 아닌 '신화의 힘(the power of myth)'이라는 제목을 붙힌 것만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 제목이 주는 메시지는 책을 읽어본 사람이나 심지어 읽어 보지 않은 사람에게도 그 메시지가 너무나 자명하게 다가 온다.

신화의 힘(the power of myth)

'신화는 힘이 있다. 그것도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힘이 있다. 하지만 신화를 읽고 그 코드를 읽고 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만이 그 숨겨진 힘을 찾아낸다.' 이것이 죠셉 켐벨이 현대 문명 사회에 '신화의 힘(The Power of Myth)'이란 저서를 내 놓으며 던진 화두이며 주 테마다. 그런데 죠셉 켐벨의 말을 빌어서 신화가 근거없는 미신이라는 주장을 하는 엉터리 지식인 진중권의 대담무쌍함은 도대체 어디서 그 힘(POWER)이 나오는 걸까? 이건 조셉 켐벨이 말한 '신화의 힘'이 아니라 진중권의 대뇌 구조 속에 자리잡고 있는 '무식함의 힘(The Power of Ignorance)'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는 진중권이 신화를 해석할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신화학에 대한 이해가 너무나 일천해서 나온 만용이 확실하다.

진중권이 왜곡한 월터 J. 옹의 구술문화와 활자문화

진중권의 작은 실수로 마치 자기가 말한 듯이 인용조차도 밝히지 않은 구술문화와 활자문화 논법은 실제로는 월터 J. 옹이 체계화한 것이다. 월트 J. 옹은 구술시대의 대표적인 텍스트로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꼽고 있다. 그리고 구술성에 대한 의미 있는 연구로 밀만 패리의 논문을 든다. 하지만 이들의 구술문화 활자문화 이론체계를 읽으면서 필자가 발견한 점은 두 문화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관계이지 그 차이나 우열이 아니다. 마치 원시 미개 사회의 문화든 현대 문명 사회의 문화든 간에 문화는 상대성을 가질 뿐이지 그 우열은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구술문화는 문자문화를 지향하게 되어 있고 의식의 지평에서 상대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기능이나 발전 단계상의 차이에 불과할 뿐이지 구술문화나 문자문화가 옳고 그름을 말하는 대목은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문자문화는 구술문화의 영속선 상에 있는 제 2의 구술문화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건 진중권이 요즘 다른 글이나 각종 행사에서 마치 자신의 이론인 양 인터넷 미디어를 예를 들어 말하고 있는 제 2의 구술문화라는 용어와도 전혀 다른 뜻이다. 즉 월터 J. 옹이 말하는 제 '2의 구술문화'란 활자문화 자체를 지칭하는 말이지 인터넷 언어를 기반으로 요즘에야 새롭게 태어난 언어 문화 형태가 아님이 분명한데 진중권은 그 개념 파악조차 잘못한 듯이 이 용어를 혼동하고 있다.

구술문화에 입각한 사고와 표현의 특징들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구술문화는 분석적이라기 보다는 집합적이며, 장황하거나 다변적이며, 종속적이라기 보다는 첨가적이며, 보수적이거나 전통적이며, 객관적 거리 유지보다는 감정이입적 혹은 참여의 속성이 강하며, 논쟁적인 어조가 강하다. 또한 인간의 생활 세계에 밀착되어 있는 속성이 강하며, 항상성이 있으며, 추상적이라기 보다는 상황 의존적이라는 점이다. 이런 특성들은 활자문화와의 구조적 차이를 말하고 있지 활자문화 보다 열등하다는 논증으로 활용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복잡하거나 정교하다는 것이 옳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듯이 기능과 영역이나 범주의 차이는 말 그대로 차이일 뿐이다. 오히려 쓰기(활자문화)는 일종의 말하기(구술문화)의 모방이라는 저자 월터 J. 옹의의 주장에 걸맞게 구술문화야말로 21세기 인터넷 문화가 꽃피운 댓글 문화에 더 닿아 있고 또 이를 해석하는데에 더 많이 활용될 수 있음을 발견한다.
여기서 유명한 곰의 색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데 이는 구술문화 활자문화가 말하는 핵심적인 요소와는 거리가 먼 데도 불구하고 진중권처럼 이를 자꾸 말하면서 구술문화가 활자문화 보다 열등한 것처럼 강조하는 것은 이 논리체계가 말하고자 하는 본질을 벗어난 일종의 트릭에 불과하다. 그런데 진중권은 이 이론을 읽었을 법한데 무슨 심사인가? 이런 핵심적인 사항은 파악을 못했는지 아니면 알면서 자신의 논리를 위해서 은근슬쩍 비껴 가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이 두 문화 사이에 무슨 옳고 그름에 해당할 만한 판단 요소라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활자문화의 세계에서 구술문화의 세계보다 훨씬 많은 거짓말이 활개치고 있다. 산문 세계의 최고봉은 소설이며 소설은 그야말로 '개연성 있는 허구(虛構)'의 세계다. 소설은 구술문화 세계보다 활자문화 세계에서 훨씬 발달되어 있고 이는 논리적이고 치밀하게 짜여진 구조라고 해서 그것이 진리임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손쉬운 예다. 그리고 사정이 어떠하든지 간에 인용을 해 왔으면 원저자를 밝히면서 사용하는 것이 학자를 지향하는 사람으로서의 기본양식이다.

신화와 신화학(Mythology)

내가 생각하는 과학적이라는 말은 '어떤 일에 그 원인(cause, input)과 결과(effect, output)를 밝힐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원인과 결과 사이에 놓여 있는 얼개를 이성적인 논리(logos)로 설명하는 작업이 집약되어 그 양과 질이 높아지면 하나의 학문체계로 발전한다. 신화학(mythology)이란 학문도 신화(mythos)를 논리적(logos)으로 해석하겠다는 목적으로 그 체계가 잡힌 이성적 작업의 산물이다. 마치 이집트의 로제타 스톤에 새겨진 상형문자처럼 해석하기 어려운 신화를 면밀하게 연구하고 해석해서 그 원인과 결과의 상관관계를 구조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그의 명저 '신화와 종교"에서 집단 무의식을 강조한 칼 구스타프 융의 경우도 그렇고 또 진중권이 인용한 죠셉 켐벨의 경우도 또한 그렇다.

진중권의 주장대로 신화는 구술문화를 갖고 있는 무지한 인간들이나 믿고 있는 터무니 없고 비과학적인 잡설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거짓 논증에 터무니없게 인용당하기 위하여 이들이 평생을 바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을 조셉 켐벨이 알면 진중권에게 명예훼손이라도 걸어야 할 정도의 심각한 오류다. 진중권은 신화학 개론 강의를 듣고 죠셉 켐벨의 '신화의 힘'에 대한 강의를 다시 들어 보기 바란다. 필자가 왜 읽어 보라고 하지 않고 남이 강의하는 것을 들어 보라고 주문하느냐 하면 진중권의 지적 능력으로 도저히 혼자서 책을 읽고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이미 진중권은 신화를 자기 글에 인용는 양식으로 보아서 자신이 신화와 신화학에 완전한 백치상태나 다름없음을 드러냈다. 그가 진정으로 신화에 대해서 적당량의 전문 지식이라도 있었더라면 박정희 신화 논증에 신화를 끌어 들이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리라. 왜냐하면 이 논증에는 신화를 끌어들이면 끌어들일 수록 진중권이 주장하려는 바와 정반대의 결과가 튀어 나오기 때문이다.

흔히 미신으로 치부되기 쉬운 민중신화에도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민중의 의식과 집단 무의식이 반영되어 있고 이를 해석해 보면 지극히 과학적인 구조를 띄고 있다는 신화학의 근원적인 목적에 의해서라도 더욱 그러하다. 신화학에 의하면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집단적으로 갈구하는 박정희 영웅신화에는 충분히 과학적인 이유가 있으므로 현 집권 세력들은 이러한 민중의 소리를 무지몽매한 소리라 무시하지 말고 겸허한 자세로 귀를 씯고 들어야 한다라는 결론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식한 지식인이 쓴 잡문에 놀아난 메이저 언론

독일에 유학간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독일에서는 단순한 학사학위 하나라도 학위를 따기가 매우 까다롭다고 한다. 일례로 한국에서는 논문을 쓰면서 장식삼아 예사로 인용하는 참고 문헌까지도 진짜로 읽어 보았는지 꼼꼼하게 검정한다고 한다. 또 읽어 보아도 그 내용을 바르게 이해를 하고 인용을 했는지도 치밀하게 검정한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대충대충 공부하던 방식으로 독일 유학갔다가는 학위를 못받는 것은 물론이고 지도교수나 논문 심사위원들로 부터 듣기에 가혹할 정도로 심한 면박만 당하고 쫒겨나기 일쑤라고 한다. 그래서 독일 가서 공부한 사람들은 유독 학위는 못따고 수료증만 달랑 들고 돌아오는 어중이 떠중이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자신이 없으면 독일에서는 아예 참고문헌을 넣지 말라고 충고한다고 한다. 지식에 대한 이런 엄밀성이 독일 지성계가 세계 지성계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작용했으리라 생각한다.

진중권처럼 죠셉 켐벨이 말한 신화가 무슨 의미로 쓰였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그것을 정반대의 쓰임으로 무모하게 인용하는 것은 학문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다. 독일에서는 지식인의 자격까지 의심받으면서 비난 받을 일이 한국에서는 그 글이 유명 잡지나 메이저 신문 칼럼에 까지 실린다. 단지 글쓴이가 세간에 이름이 좀 있다는 이유로 그 글의 논리적인 엄밀성과는 상관없이 버젓이 메이저 신문에 실린다. 알음 알음으로 글을 청탁하고 또 그런 까닭에 엄밀한 검정도 할 수 없는 학벌과 전근대적인 친분의 세계가 지배하는 한국의 지성계, 이것이 부패한 한국 지성계의 현주소다. 한국 사회에서 논문을 작성할 때 표절도 예사고 심지어 스승이 제자의 논문을 훔치는 경우도 종종 기사에 오른다.

진중권이 말한 조셉 켐벨의 인용이나 거기에 나온 신화나 구술문화 활자문화 논법은 글쓴이 진중권의 논지와는 전혀 동떨어진 논리다. 이는 노란 레몬을 맛보면 나오는 신맛을 설명하고자 하는 사람이 빨간 청양 고추를 먹어보면 상큼한 신맛이 난다고 설명하는 일이나 비슷하다. 그래 놓고 한 술 더 떠서 신라면할 때의 그 신(辛)자가 노란 레몬이 입안에 터지면서 느끼는 신맛할 때의 신자(字)와 같은 뜻이라고 별 유식한 체를 다 떠는 짓이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의 신라면이 일본 중국 등에서 많이 소비되고 있는데 이는 한류현상의 승리며 이게 다 상큼한 레몬맛을 한국의 토종 브랜드 라면에 고스란이 살려냈기 때문이다. 라는 식으로 진중권 특유의 '내용은 없지만 너무나 감각적인 글쓰기'가 횡행하고 있다면 어떨까?

이는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그림 '천지창조'로 불교의 우수성을 설명하는 일만큼이나 황당하다. 물론 이런 지적 사기가 통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건 레몬 맛과 고추맛의 차이를 모르고 미켈란젤로 그림이 기독교 그림인지 아니면 불화(佛畵)인지 모르고 오직 그 유명세에 주둑들어 있는 그 중에서도 지적인 능력이 좀 떨어지는 독자들 뿐이다.

조금만 실력있는 논술교사라면 얼핏 훑어만 보아도 빨간 줄로 좌우로 쫘악 그어서 진중권에게 반려해야 할 엉터리 잡문임에 틀림없는데 어떻게 국내 메이저 신문의 칼럼에 버젓이 게재될 수 있었을까? 이것은 한국 지성계나 언론계의 검열 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한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이다.

박정희 신화는 결코 구술문화와 활자문화와의 충돌현상으로 설명될 사항이 아니다. 진중권의 타당성을 가질려면 박정희의 강압 통치에 반대하며 거의 한 평생을 보낸 안병직 서울대 교수나 백기완 같은 민중 운동가들이 박정희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일이 설명할 수 없다.

진중권에 의하면 그들이 구술문화를 신봉하는 무지몽매한 사람들이어야만 한다. 한데 이들은 한국의 활자문화 세계에서 꼭대기에 올라 있는 사람들이며 학계에서 진중권이 쳐다도 보지 못할 정도로 더 인정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갑자기 활자문화를 신봉하다가 구술문화를 신봉하는 사람으로 전향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도 아니다. 뿐만 아니라 <<쾌도난마 한국경제>>를 쓴 케임브리지 대학 경제학 교수 장하준과 그의 공저자 정승일 박사나 박효종 서울대 교수도 박정희의 선택을 높게 평가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활자 문화의 정점에 있는 학자들에 의한 박정희 긍정 평가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죠셉 켑벨이나 월터. J 옹의 신화와 구술문화 활자문화 논법

그럼 왜 진중권이 말한 죠셉 켐벨의 신화와 구술문화 활자문화 논리와 현실 세계가 일치하지 않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그건 현실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진중권이 죠셉 켐벨이나 월터. J 옹의 활자문화 구술문화의 논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중권의 지적 능력이 부족해서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을 그 구조를 쉽게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다.

죠셉 켑벨이나 월터. J 옹의 신화와 구술문화 활자문화 논법은 다음과 같다. 신화나 구술문화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바람의 작용을 풍백 우사로 설명하여 바람의 중요성을 표현한다. 반면에 활자문화는 바람의 작용을 온도의 차에 따른 기압의 작용으로 이해해서 바람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죠셉 켐벨이나 월터.J 옹이 공통으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신화와 구술문화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이해가 신화적 구조를 띄고 있다고 해서 무지몽매하고 활자문화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과학적 구조를 띄고 있어 현명한 판단이라는 주장에 있지 않다. 양쪽 모두 '바람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구술문화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비록 과학적인 용어를 쓰고 있지는 못하지만 '과학으로 이를 분석하고 알게 될수록 그것이 너무나 정확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기에 새삼 놀라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의 차이점을 강조하는 일에다 신화나 구술문화 활자문화를 인용하는 사람은 신화와 월터.J 옹의 논지를 잘못 이해한 것에서 오는 무식한 해프닝에 불과하다.

사실 박정희 신화는 구술문화와 활자문화와 전혀 상관없이 일어나는 현상일 뿐이다. 이것은 한국 사회에서 박정희를 세종대왕 이순신보다 높은 단계의 리더로 평가받는 비중이 교수 등의 활자문화 계통에서 종사하는 사람에게서 더 높게 나타나는 사실에서도 반증된다. 구술문화 활자문화의 원저자 월터 J. 옹도 활자문화란 구술문화와 별개의 것이 아니며 구술문화의 영속선 상에서 일어나는 '2차 구술문화'라고 정의한 이유를 생각해 보면 더욱 그러하다.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논지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일생의 업적을 통하여 정반대의 논지를 주장한 사람의 말을 가져와서 자신의 엉터리 글을 치장하려 하는 것은 제대로 무식하지 않으면 절대로 시도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이런 글을 특별한 검정도 없이 국내 굴지의 메이저 신문에 덩그러니 싣었다는 자체가 한국 언론계의 수치라 할 만하다. 이것이 한국 지성계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밝혀주고 있는 현장이다. 진중권이 앨런 소칼의 경우처럼 아예 동아일보를 망신시키기를 작정하고 엉터리 잡문을 써서 버젓이 칼럼에 실리는 광경을 만천하에 드러내기 위해서 그 글을 썼다면 나름대로 이해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이 글을 쓴 이후에도 자신의 무지에 대해서 부끄러움도 모른 채 계속해서 이와 연관된 엉터리 잡문들을 연속해서 생산해 낸 것을 생각할 때 이런 과감한 실험정신은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논리는 진리를 설명하는 도구에 불과할 뿐

진중권이 말한 논법이 얼마나 엉터리 잡설인지 모두가 알기 쉽게 우리의 단군신화를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고조선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에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 나온다. 여기서 진중권의 말한 그대로 '바람은 왜 부는가?'라는 화두를 던져 보자. 진중권의 주장을 밝히면 무식하여 구술문화 논법에 젖은 민중들은 바람의 신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고 활자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기압의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 칼럼에서 진중권이 인용한 신화학의 대가 조셉 켐벨은 어떤 말을 할까? 아마 그는 다음과 같은 매우 과학적인 해석을 내릴 것이다.

"고조선이라는 나라는 분명코 농경사회일 것이다. 농경사회는 바람(風)과 비(雨)의 작용이 인간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래서 고조선의 건국신화에 다른 신도 아닌 바람과 비를 주재하는 신 風伯과 雨師가 나올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구조'를 갖게 된 것이다. 이건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민족 신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엄밀하고 과학적인 구조다. 단지 그 당시 사람들이 바람과 비의 작용에 대해서 설명할 만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신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21세기 현재처럼 바람과 비를 과학적인 용어로 설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미신이나 어리석은 일로 치부하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이 하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라고 말할 것이다.

농경사회에서 바람과 비의 중요성은 바람과 비의 작용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말고 하는 성질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쉽게 설명하면 지구가 태양을 도는 사실(fact)은 갈릴레이가 과학적으로 설명했기에 비로소 시작된 것이 아니다. 갈릴레이의 과학적인 설명이 있든 말든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사실은 진실이고 이는 갈릴레이 이전에 천동설이 팽배했다는 사실하고도 무관하다. 갈릴레이가 성공한 것은 지구가 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일일 뿐이지 지구가 돈다는 사실을 바꾼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민중들의 논리가 덜 갖추어 졌기에 신화로 집단 무의식을 표현해 냈을 뿐이지 세월이 흘러 논리가 갖춰진 시대가 되었다 한들 집단 무의식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아무리 원시 시대의 신화라 하더라도 고도로 문명화된 현대 사회에 던져주는 시사점은 너무나 크다. 이는 수천년이 흐른 미래에도 여전히 동일한 힘을 가질 것이다 라는 것이 신화학에서 주장하는 요체다.

즉 어떤 사실의 중요성은 논리적으로 또는 수학적으로 설명 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이 중요성이라는 테마는 구술문화를 신봉하거나 활자문화를 신봉하거나 전혀 상관없이 동일한 비중을 갖고 있다. 대한민국의 민중들이 박정희를 찾는 현상은 고조선 시대에 바람과 비의 작용이 농경생활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기에 풍백 우사를 찾은 것과 같은 중요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박정희가 해결했던 민생고 해결이 중요한 위치를 점할 만큼 민중의 생활이 피폐해 졌다는 사실로 설명되어야 올바른 해석이다. 실제로 경제적인 문제로 자살한 사람이 2005년 한 해에만 1만 3000 여명에 이른다. 꼭 감옥에 투옥되어 고문당해 죽어야만 억울하게 죽는 일이라고 주장할텐가? 바람의 작용을 기압의 차로 설명하고 말고가 바람의 작용이 중요하다는 사실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민중들이 은인을 찾든지 원인을 찾든지 상관없이 민생고를 해결해 주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메세지를 겸허하게 읽어 내야만 조셉 켐벨이 신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본질에 닿게 된다는 것은 웬만한 지적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사항이지 않은가?

비바람을 막아 달라는 아우성을 하는 민중들에게 '비바람은 기압차로 생기는 데 어쩌고 저쩌고 하는 설교를 하는 짓은 배고픔을 해결해 달라는 사람에게 '배고픔이란 위와 내장에 음식이 오랫동안 들어가지 않아서 생기는 공복감에서 오는 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하며 이런 사실을 잘 알면 배고픔이 해결된다고 주장하는 어처구니다.

어떤 영웅신화에도 명확한 이유가 있다

만일 고조선 건국 시절에 한반도에 터를 잡은 사람들이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아서 먹고 사는 것을 해결해야 하는 민족이었다면 단군신화에는 당연히 풍백우사보다는 그리이스의 포세이돈 같은 바다의 신(海神)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였을 것이다. 이는 신화에 대한 기초 상식이라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한데 진중권에 의하면 그게 바다신(海神)이든 바람신(風師)이나 비신(雨師)이든 아무런 차이가 없다. 진중권의 가설에 따르면 그저 구술문화에 깃든 사람이라면 바다신 바람신 비신이라 할 것이고 활자문화에 깃든 사람이라면 그건 해류의 작용이고 기압의 차이에 의한 것이라는 기가 막힌 동문서답이 나올 뿐이다. 농경문화에서는 비바람이 민중의 삶을 좌지우지 할 정도로 중요하고 해양문화에서는 바다가 민중의 애환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코드를 읽어내야 하는데 무슨 해류의 작용이고 기압의 차이 운운하며 다른 분석은 미신이라고 주장하다니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다.

민중들이 영웅신화를 갈구하는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 배고플 때 박정희 영웅신화를 찾게 되듯이 나라를 잃었을 때는 양만춘이나 을지문덕, 강감찬 같은 영웅신화를 찾는 것은 그들이 무지 몽매하기 때문이 절대로 아니다. 일제 강점 시대에 신채호 박은식 같은 역사학자들이 황당무계하고 비과학적으로 보이는 영웅신화를 살려 내어 역사서에 싣은 이유를 생각해 보라. 이때의 역사서를 보면 웬만한 장군이면 초등학교 시절에 맨손으로 호랑이들 때려 잡는다. 신채호 박은식 같은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이 지성이 모자라고 활자문화를 모르면서 구술문화에 젖어 사는 무지몽매한 사람들이었기에 그랬다는 말인가? 절대 아니다. 이분들은 신화가 뭔지 그게 민중들에게 어떤 의미와 힘(The Power of Myth)을 갖고 있는지 너무나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실이 암울하면 민중들은 희망이라도 간직하고 살겠다는 바램이 절절이 반영된 것이 바로 영웅 신화다.

소설가 김형경은 조셉 켐벨이 말하고자 하는 신화의 본질을 제대로 봤다. 이 책을 본 김형경은 말한다. "신화의 기능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우리는 주변에 널리 유포되는 영화나 소설을 통해 그것들을 향유한다......" 필자가 굳이 서두를 셜록 홈즈와 괴도 루팡의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무리 과학적인 추리기법을 사용하는 소설일지라도 그 역시 집단 무위식의 코드를 반영하고 있다는 예증으로 들었을 뿐이다.『신화의 힘』에서 조셉 캠벨이 궁극적으로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개인의 삶 역시 영웅 신화의 구조를 띠며, 누구나 제 삶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영웅신화에 대한 개념이 신화라고는 전혀 모른다고 밖에 판단할 수 밖에 없는 진중권에 의해서 영웅신화의 희구가 구술문화에 깃든 사람들의 비주체적인 갈망으로 왜곡될 수 있다는 말인가? 참으로 어이가 없는 반전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정말 진중권이 한 말을 원작자 조셉 캠벨이 읽었다면 '정말 귀여운 놈이로고' 하면서 고분고분 넘어갈 것 같지 않다.

박정희 신화의 실체

우리 민중들이 박정희 신화를 창작하고 있는 이유는 박정희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독재자의 이미지만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박정희가 총칼을 이용해서 독재를 했다고 하지만 박정희 시대에 건설한 포항 제철이나 옥포 조선은 총칼로 되는 일이 아님은 이땅의 민중들은 너무나 잘 안다. 천혜의 자원을 타고난 아르헨티나는 박정희의 18년보다 훨씬 오랜 기간인 무려 28년간(1955~1983년)이나 군사독재시대를 거쳤다. 그 시기도 우리의 6.25 전쟁 직후 부터 시작되어서 아르헨티나 군부가 경제 실정을 애국심으로 돌파해 보려고 일으킨 포틀랜드 전쟁을 일으킨 1983년까지다. 군부독재가 아르헨티나를 지배한 이 기간 동안 세계 5위의 경제대국에서 오히려 세계 최빈국으로 급락했다. 게다가 이 기간 동안의 인권유린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76년 군사 쿠테타로 집권한 호르헤비델라는 극악한 공포정치로 77년부터 이후 약 3년간 인류사에도 치욕스러운 '더러운 전쟁(dirty war)'을 수행했다. 좌익게릴라 척결을 명분으로 반대세력에 대해 무자비한 탄압을 가한 이 시기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수는 아르헨티나 당국의 추정만으로도 약 8천∼1만명에 달한다고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더러운 전쟁'의 희생자 유가족 모임인 '5월 광장 어머니회'의 주장은 이와 달리 희생자 수가 2만 5천∼3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한 아르헨티나 해군 조종사가 1995년에 고백서로 내놓은 '비행' 이라는 책에 의하면, 아르헨티나의 군사정권 시절 잡혀 온 사람들은 비행기에 태워 마약을 먹인 후 대서양 한 가운데로 날아가 발가벗긴 후 그냥 비행기 밖으로 던져버렸다고 한다. 그 군사정권 시절 동안, 저자가 복무하던 공군기지에 매주 수요일 수 십 명씩 트럭에 실려 왔으며, 자신의 부대에서만도 최소한 2000여 명을 그런 식으로 대서양 한 가운데 던져 버렸다고 한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증언서다.

우리가 쉽사리 개발독재라는 말을 하고 있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독재는 아무나 할 수 있을 지는 몰라도 독재를 하는 기간에 개발까지 병행할 수 있는 능력은 아무나 타고 나는 자질이 아니다. 총칼로서 독재와 압제를 달성할 수 있을 지는 몰라도 보릿고개를 넘고 후진국의 경제를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으로 키워내는 것은 총칼로서는 불가능하다. 정말 실사구시에 뛰어난 CEO의 자질을 갖추지 않고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박정희에 대한 공과를 제대로 평가하자고 하는 민심의 원동력이다.

가깝게는 한반도의 북쪽을 보라. 총칼을 앞세우면서 선군(先軍)정치를 강조한 북한의 사정은 또 어떠한가? 무려 300만명에 이르는 아사자를 낳고 탈북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세계적 자원 부국인 아르헨티나와는 정반대로 세계 최빈국의 위치에서 시작해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이끈 박정희의 리더쉽에서는 총칼로 설명될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이 있었음을 민중들이 직관적으로 더 잘 알고 있다. 구술문화 토양에서 나오는 그들의 직관은 활자문화의 대가들인 교수들에 의해 리더쉽 이론이나 경제학이나 통계지표로도 설명이 되고 있기에 구술문화 활자문화에 상관없이 동시에 힘을 얻고 있다. 이는 고도로 발달된 과학적인 능력과 실사구시에 기반을 둔 실용주의 철학과 이를 구체화 시킬 강한 정신력과 리더쉽이 없었다면 박정희가 이룬 경제 성과가 쉽지 않았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는 대목이며 이것이 바로 박정희의 공과를 제대로 평가하자고 하는 민중의 준엄한 요구이다.

박정희 신화와 이명박 신화

그렇다고 민중들은 아무에게나 영웅신화를 부여하지 않는다. 프레이져의 <<황금가지>>에서는 황금가지를 꺽어 오는 임무(mission)에 성공하고 동시에 전임 사제를 죽이는 데 성공한 특별한 사람에게만 이 자격이 부여된다. 과거 노태우가 호헌을 외쳤던 전임 사제였던 전두환을 죽이는 쑈였던 6.29 선언을 하면서 순식간에 대권 고지에 다가선 것이나 이회창이 김영삼에게 반기를 든 행위로 대쪽 이미지를 획득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황금가지에서 읽어낼 수 있는 신화적 코드다. 노무현 대통령이 전임 사제인 민주당을 죽이는 행위로 정치력을 획득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 닿아 있다.

참여 정부 인사들에게는 달갑지 않고 불길한 징조겠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민중들은 이 희망의 끈을 과거의 박정희 신화와 곧 다가 올 이명박 신화에 희망을 걸고 있는 듯하다. 이 정부 들어서 공약으로 내세워서 제대로 달성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온갖 수선을 다 떨면서 아파트 값을 잡는다고 호언장담해 놓고 오히려 아파트값 폭등을 부채질 하는 집권층의 무능력을 몸소 경험한 민중들이 무엇을 보고 다음 대권을 향방에 둔 황금가지라고 생각할까? 사실 이명박의 성공신화와 청계천 복원의 성공은 바로 집권 세력의 무능력에 질려 있는 민중들에게는 쉽사리 거부할 수 없는 황금가지다. 이 신화가 워낙 강렬하기에 아무리 황제 테니스 사건으로 흔들어도 이명박의 아성은 철옹성이다.

사실 이명박에게 있어 이 황금가지는 이미 꺽어서 손에 쥐고 있는 상태다. 그에게서 전임 사제를 죽이는 행위는 박정희의 독재 이미지만 살짝 걷어 내면 된다. 아니 21세기를 살아가는 이명박이 독재자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는 시대인데도 불구하고 그에게 억지로 독재의 이미지를 덧씌우려고 획책하는 세력의 음모만 이겨내면 된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 손쉽다. 박정희 시대에는 합리와 대화와 설득을 주로 하는 TV토론이라는 무대가 없었지만 이명박 시대에는 이런 통로가 열려 있다.

이명박을 공격할려면 황제 테니스 이런 이야기로는 절대 안된다. 차라리 논객 공희준의 지적대로 청계천을 발로 차서 흠집을 내는 것이 한결 효과적이다. 왜냐하면 2006년 현재 한국 민중들이 원하는 황금가지는 청렴함이나 도덕적인 우위가 아니라 자신들을 빈곤과 양극화의 희생이 된 절망의 늪에서 구해 줄 희망을 가진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건 민중들이 우둔해서가 아니라 비록 논리적으로 설명은 못할 지라도 피부로 또는 느낌으로 알 말큼 현명하고 솔직하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스타워즈라는 최첨단 영화를 본 신화학자 죠셉 켐벨이 "테크놀리지는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고 말한 이유를 다시 한번 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진중권이 활자문화 구술문화라는 억지논리로 이용해 먹으려 했던 논리와 기교를 뛰어 넘어 진실을 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안목은 '직관'이라고 설파한 것이나 다름없다. 놀랍게도 민중들은 논리와 합리성은 떨어질 지는 몰라도 과연 누가 자신들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해 줄 가능성이 큰 사람인가 하는 점을 본능적으로 잘 알고 있다.

물론 이런 직관이 뛰어난 사람들에게 진중권 같은 사람들에게 주어졌던 배움의 기회가 비슷한 정도로만 주어졌다면 그들 중에서 진중권 류보다 훨씬 뛰어난 지식인들이 무수하게 출현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많다. 이런 사정을 모르고 구술문화니 활자문화니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건 무식이나 뻔뻔스러움에 다름 아니다. 또한 이것은 지식인으로서 민중의 절박한 요구가 무엇인지를 백안시하겠다는 의도며 너무나도 위선적인 자기 기만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는 좌파 지식인들의 분발을 요구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좌파 지식인들이 생각 이상으로 무식하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돈다. 내가 보아도 솔직히 좀 그렇다는 판단이 든다. 진중권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 마지 않았던 노엄 촘스키조차 지적 사기에 연루되어 그 위선이 벗겨지고 있는 판국에 진중권이 장하준 정승일과 대담 프로에 나가서 공공연하게 온갖 창피를 다 당한 일은 특별한 일도 아니다.

좌파의 위기는 진중권 류에 대한 대중의 평가와 인식 때문만이 아니다. 좌파의 가치를 드높이기 위해서는 이렇게 무식한 상태로 알맹이도 없이 지극히 감각적인 말만 일삼는 일은 절대로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그가 좌파든 우파든 간에 논쟁과 주장 그리고 학문에는 일정 수준 이상의 엄밀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런 엄밀성 조차도 갖출 수 없는 수준으로 좌파의 가치를 설파하고자 나선다면 그들은 분명코 좌파에 대한 경멸과 조롱을 불러 오는 데 확실하게 기여할 뿐이다.
/ 김휘영(문화비평가) 출전 : 대자보(www.ja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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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빅하게 말해서 진중권의 사상과는 완전 반대의 입장에 있지만, 진중권의 실력은 인정받을 만 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읽고 보니, 제가 생각하고 있던게 잘못된 것이었던 모양입니다.

하긴 축적된 지적 정보의 양이나 그동한 이루었던 지적 역량 자체가 한참 미달이었으니까, 초록은 동색이라고, 무식한 사람끼리 잘난 척 한 것이겠지요.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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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비밀에서 이 글을 옮겨주신 분의 코멘트도 추가합니다.

 

무위(Full 필명은 "무식과 위선 " )이란 분은 근자에 진보계열, 글 판에선 식견과 필력을 최고로 인정받으시는 분임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진중권킬러 시죠..
뭐 그 쪽동네에선 진중권씨랑 한판 걸지게 쌈판이 붙었으면 하던 눈치가 오래전부터 였는데....수년에 걸친 무위의 의도적 도발(?)행위 에도 쥐죽은듯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망만 다니는 진중권씨 의 행태에 ..관중석에선 이젠 거의 그 기대를 접어버린 듯하네요...
만약 교전(?)이 이뤄진다면 대단한 이벤트임엔 틀림없지요

by 알랭드보통 | 2007/09/18 07:14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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